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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민주주의, 귀중하지만 깨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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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외출할 때면 군 장교 보좌관이 묵직한 20㎏짜리 검정색 가방을 들고 따라나선다. ‘뉴클리어-풋볼’(Nuclear Football)이란 명칭이 붙은 ‘핵가방’이다. 이 가방 속에는 비상시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코드와 통신 방법이 들어 있다.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로 소련과 대치하고 난 후 고안된 이 ‘핵가방’은 미국 대통령의 군통수권 상징이다.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물러나는 대통령은 백악관을 비워줘야 하는 것처럼 이 핵가방도 새 대통령에게 넘겨줘야 한다. 대통령 취임선서는 1월20일 낮 12시에 이루어진다. 취임식이 열리기 전 의사당 취임 식장 기둥 뒤에는 정복 차림의 장교 2명이 서 있다. 떠나는 대통령의 보좌관은 가방을 들고 새 대통령 보좌관은 빈손이다. 취임 선서를 하는 순간 보좌관들은 가방을 주고받는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휘·통제하는 권한이 새 대통령에게 넘겨지는 순간이다.

20일 열린 제46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핵가방 인수인계 의식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식 참석을 거부하고 4시간 전에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플로리다에 있는 그의 별장을 향해 떠났고, 핵가방은 아직 대통령 신분인 그를 따라 비행기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별 문제는 없었다. 대통령 유고시에 대비한 핵 가방은 또 있었고, 바이든 대통령 취임 선서와 함께 트럼프를 따라간 핵 가방의 작동 기능이 해제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작은 해프닝은 건강하게 여겨졌던 미국 민주주의가 트럼프 대통령 4년 동안 심각하게 훼손된 채 바이든 대통령에게 넘겨졌음을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다. 취임식 날 아침 신·구 대통령 부부가 백악관에서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 후 함께 차를 타고 의사당의 취임 식장으로 이동한다. 취임식이 끝나면 새 대통령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전임 대통령 부부를 전용 헬리콥터까지 배웅한다. 위성통신이 발달한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도 TV를 통해 이 멋진 광경을 여러 번 보았다. 선거는 권력 쟁취 과정이다. 따라서 대립했던 두 정파가 분노와 감정이 뒤섞이게 마련이지만, 미국의 신·구 대통령은 국민의 단합과 국익을 생각하며 절제와 인내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바통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전통을 1869년 단 한 차례만 빼고 245년간 지켜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참석을 거부하고 비행장에서 지지자들을 모아 놓고 하고 싶은 연설을 한 후 “어떻게 해서든 돌아오겠다”는 뒷말을 남기고 떠났다. 데이비드 생거 뉴욕타임스 기자의 지적처럼 바이든 취임식장의 트럼프 부재가 주는 인상은 너무 컸다. 그의 불참을 아쉬워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지자들로 하여금 의사당 난입을 부추긴 혐의로 하원의 탄핵소추를 받은 그가 취임식은 물론 미국의 앞날을 암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트럼프 탄핵재판을 놓고 미국은 또 뜨거운 정치논쟁과 더불어 분열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오늘은 아메리카의 날입니다. 오늘은 민주주의의 날입니다.”

선서 후 시작된 조 바이든의 취임 연설 첫 마디는 매우 인상적이고 암시적으로 들렸다. 인상적인 이유는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통합된 나라로 표현하는 명칭이 ‘아메리카’요, 가장 귀중하게 내세우는 가치가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암시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245년 미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의사당 난입 사태로 ‘아메리카’의 명예는 추락했고,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 배후에 바로 전임 대통령이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민주주의’와 ‘통합(Unity)’을 여러 차례 역설했다. 그는 트럼프를 직접 거명하지 않았지만 연설 구절구절에서 트럼프 정책을 뒤집고, 분열되고 산만해진 미국의 분위기를 추슬러 나아가려는 의지를 비쳤다.

그의 연설에서 눈을 끈 대목은 미국이 직면한 일곱 가지 공격을 지적한 부분이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진실에 대한 공격 ∇맹렬한 바이러스의 공격 ∇상처를 주는 불공정의 공격 ∇조직적인 인종주의의 공격 ∇기후위기의 공격 ∇미국의 역할에 대한 공격 등을 열거했다.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큰 도전인데 이들 문제들이 한꺼번에 해결해야 한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다”고 말하면서 통합을 강조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고령으로 취임한 대통령, 가장 젊은 나이에 상원의원이 되어 6선과 부통령 2선을 포함해 44년을 미국 의회 정치 현장을 지켰던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방향타를 잡았다. 미국의 분열을 어떻게 치유해서 통합하고 잃어버린 글로벌 리더십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그의 취임100일이 관심거리다. <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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