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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조지 슐츠의 인생 지혜,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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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고 길게 살았구나.”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의 타계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든 생각이다. 미국의 국무장관을 생각하면 닉슨 정부 때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헨리 키신저가 우선 떠오르지만, 레이건 정부 때 미·소 냉전을 종식시키는데 결정적 협상력을 발휘한 조지 슐츠의 업적도 탁월했다.

1920년 12월 13일 태어나서 2021년 2월 7일까지 살았으니 100년 장수다. 1942년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태평양 전쟁에 해병대로 참전했다. MIT에서 노동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교수로 일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아더 번스가 이끄는 대통령경제자문회의 선임 직원으로 권력세계에 발을 들여놨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닉슨 대통령에 의해 노동장관, 행정관리예산실장, 재무장관 등 요직에 발탁됐고, 레이건 대통령 정부에서 6년 반 동안 국무장관으로 미국의 세계전략을 짜는 등 그는 팩스아메리카나 시대의 한 가운데를 살았던 셈이다.

슐츠는 정부 요직 뿐 아니라 MIT와 스탠포드 대학 교수로서, 또 거대 엔지니어 회사 벡텔 CEO로도 활동했다. 그의 이런 역동적인 삶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며 그가 삶에서 얻은 인생관은 무엇인가. 100세를 며칠 앞두고 지난해 12월 11일 워싱턴포스트에 ‘신뢰’를 주제로 칼럼을 기고했다. 이 글은 인간 사회의 정곡을 찌른 관찰로서 인상적이다.

“100세를 맞으면서 그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인생을 뒤돌아보니 일찍부터 그리고 계속해서 내가 배운 한 가지 교훈이 떠오른다. 그건 신뢰다. ‘신뢰는 법정화폐다’. 방 안에 신뢰가 차 있을 땐, 그게 어떤 방이든 가정의 거실이든 교실이든 라커룸이든 사무실이든 정부기관의 방이든 군대의 병영이든 좋은 일이 일어났다. 방안에 신뢰가 없을 땐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것들은 세부적인 것들일 뿐이다.”

1985년 소련에 권력변화가 일어났다. 미하일 고르바쵸프 공산당 서기장이 개방 개혁을 내세우며 소련최고지도자로 등장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스타워즈’라는 전략방위구상(SDI)을 추진할 때였다. 1986년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미·소 정상회담이 열렸다. 핵 군축을 위한 담판의 시작이었다. 당시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 등 미 정부의 안보팀은 고르바초프가 변할 리 없다며 강경노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슐츠는 고르바초프의 진정성을 보았고 고르바초프 또한 슐츠를 협상 상대로 신뢰하면서 중거리 핵탄두를 줄이는 길을 열었고, 결국 동서 데탕트와 소련연방의 해체를 불렀다. 레이건 대통령이 슐츠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슐츠의 인생관은 지난 두 차례 대통령 선거 때 드러났다. 그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나설 때도, 작년 재선 운동 때도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트럼프에 대한 신뢰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도 않았다. 그는 충실한 공화당원이었다. 슐츠가 국무장관이었을 때 조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으로 긴밀하게 접촉했던 사이다. 99세 슐츠가 78세인 바이든에게 던진 농담 겸 덕담은 이랬다. “내 관점에서 보면 당신은 유망한 젊은이입니다.”

“위기에 처한 나라의 운명을 맡길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조지 슐츠를 선택할 것이다.”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그의 회고록에서 슐츠를 평가한 대목이다. 트럼프 정치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요즘 미국의 정국과 맞물리면서 마음에 와 닿는 말이다. 어디 미국뿐인가. 요즘 한국 정치권이나 공직사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노라면 슐츠가 강조하는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를 절감할 수 있다. <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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