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카오톡을 쓰고, 카카오택시도 가끔 이용한다. 하지만 카카오란 회사와 그 문화에 대해 거의 모른다. 아날로그형 인간에 불과한 나는 기업이라면 강철이나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를 먼저 머리에 떠 올리지, 소위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로 돈을 버는 회사를 이해하는 덴 거리감이 느껴진다.

카카오 창업자이며 이사회 의장인 김범수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미디어를 통해 공대출신, 염소수염, 인터넷게임 사업, 카카오 창업 등이 그를 이해하는 키워드의 전부였지, 김범수의 기업가 정신을 관찰해 본 적이 없다.

그런 정도로 알고 있던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2월 8일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 걸 듣고 놀랐다. 아니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가 누구이기’에 하고. 아직도 스타트업 창업자쯤으로 생각했는데 그의 재산 규모가 10조 원이 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실리콘밸리에서 닷컴 열풍이 분 지 한 세대가 지났고, 그때 세계 10대기업에 이름도 감히 못 올렸던 애플, MS,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소위 플랫폼 기업의 가치가 제조업 시대의 공룡기업들을 내몰고 10위권에 올라섰다. 이런 기류를 타고 한국에도 IT열풍이 불었고 스마트폰 시대의 플랫폼 기업으로 급성장한 것이 카카오다. 카카오 주가총액이 포항제철을 능가한다니, 아날로그 사고 체계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富)의 변동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김범수 의장이 약속한 기부 규모는 현재 시점에서 5조 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시대를 맞아 카카오 주가는 폭등했고 툭하면 하루 1~2% 오르고 내리는 건 흔한 일이니, 그의 부는 날마다 1000억~2000억 원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셈이다. 따라서 김범수의 사회 환원 기부액도 아직은 미정이라 하겠다.

21세기에 태어난 이 젊은 기업이 얼마나 성장할지 아무도 모른다. 미국 월스트리트만 아니라 이젠 한국에서도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이 대박을 치는 세상이 됐으니 아날로그형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의 축적이 이루어질 수 있다.

김범수 의장은 직원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사회 기부 의사를 밝혔다. 거창하게 기자회견 같은 행사를 하지 않았다. 인터넷 기업가다운 새로운 방식이다.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 이상 결심을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이지만,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입니다.”

아직 기부한 돈이 쓰일 용처도 특정하지 않았다. 김 의장은 흥미롭게도 기부를 어떻게 쓸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직원과 공유하고 아이디어도 얻겠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가 멀린더&게이츠 재단을 만들기 전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해결하겠다고 밝혔던 것과 비슷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 의장은 평소 미국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자주 읽으며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할 생각을 품었다고 한다.

요즘 우리 사회 분위기는 어둡고 답답하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은 매일매일 질병의 공포 속에 산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다. 세계경제의 침체로 경기는 위축되고 자영업자들은 가게 문을 닫고 실직자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는 사람들에게 전혀 희망을 주지 못한다. 정부가 돈을 많이 풀지만 인플레와 증세의 염려가 사람들의 마음을 휘감는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 속에 김범수 의장의 재산 절반 기부 약속은 어둠속을 비추는 한 줄기 희망의 빛과 같다.

김범수에 이어 8일 또 한 사람의 디지털 기업가 김봉진이 재산 절반 기부를 약속했다. ‘배달의 민족’ 창업자 김봉진 의장은 빌 게이츠와 워렌 버펫이 만든 자선기부 클럽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한국인 최초로 가입했다. 이 클럽의 가입 조건은 재산이 10억 달러 이상이고 그중 절반을 기부한다고 약속해야 한다. 김봉진 의장의 재산 기부액은 현재 가치로 5500억 원이라고 한다.

김범수, 김봉진의 재산 절반 기부 약속은 한국의 기부문화에도 새로운 바람이 될 것 같다. 부자들의 기부에는 원래 말이 많다. 과거 재벌 총수들의 기부가 그랬다. 그래서 기부 의도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김범수가 재산 절반을 사회를 위해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사회적 반향이 클 것이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는 것“

김범수 의장이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에머슨의 시구가 우리나라 많은 부자들의 마음에 더욱 울려 퍼지기를 바란다.<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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