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8시40분 제주지방법원 2층 201호 법정 앞.

1시간20분 뒤 제주4·3 당시 불법 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야 했던 수형인 335명에 대한 재심이 열리는 역사적인 이 곳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이임자(79·여)·이석종씨(77) 남매였다.

두 남매는 아직 불도 켜지지 않은 깜깜한 로비 한쪽 의자에 앉아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이고, 하이고…'라는 말을 되뇌며 멍하니 한숨을 푹푹 쉬던 두 남매는 하나 같이 "너무 긴장돼 말도 잘 안 나온다"며 겨우 입술을 뗐다.
 

막냇동생 이정선씨(75·여)를 포함해 삼남매인 이들은 1948년 제주4·3 당시 아버지 고(故) 이시전씨(당시 33세)를 잃었다.

군경의 소름끼치는 부름에 집 밖으로 뛰쳐 나가자 마자 트럭에 실려나가는 광경이 이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깜깜무소식이 이어지다 두석 달 뒤 들려온 소식 역시 충격적이었다. 아버지가 영문 모를 재판을 받고 목포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라는 이야기였다.

이후 아버지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당시 수형인들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총살된 뒤 암매장돼 행방불명된 것으로 현재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서 콩·보리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지내 온 이씨 집안은 가장의 부재와 연좌제 등으로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났다.

당시 인근 하귀리에 몸을 숨기고 있던 어머니 고 강세녀씨와 삼남매는 1년 뒤 고향집으로 돌아갔지만 이미 모든 가재는 불에 타 없어진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삼남매는 홀어머니 밑에서 밀 찌꺼기를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이임자·석종씨 남매는 나란히 제주지법 201호 법정으로 들어갔다.

이내 검찰과 법원이 내란 실행·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를 뒤집어쓴 아버지에게 무죄를 구형·선고하자 이씨 남매는 애써 꾹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임자씨는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내기 바빴다.

이후 법원 앞에서 만난 이씨 남매는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임자씨는 "오늘은 정말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인데…"라고 울먹이며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집도 없이 못 먹이고 못 입혀 미안하고 미안하다'던 어머니의 말습관이 자꾸 생각나 눈물만 난다"고 했다.

그는 이어 "70년 넘게 작은 바람에 '달그락' 하는 문소리에도 맘 졸이며 살아왔는데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아버지의 누명이 벗겨지는 순간을 보게 돼 정말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도 했다.

이석종씨도 "아버지가 행방불명돼 생신날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그 날이 바로 오늘"이라면서 "제주4·3 당시 너무 어려 아버지가 뭘 좋아하시는 지는 잘 모르지만 (제사상에) 맛있는 음식과 '4·3 무죄'를 써 올리고 싶다"고 했다.

저작권자 © 뉴스1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