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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신(新)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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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1일 중국 하이난(海南)섬 인근을 비행하던 미군 정찰기와 이를 견제하려고 출격한 중국 요격기가 충돌하는 아찔한 사건이 있었다. 바다에 추락한 중국 요격기의 승무원은 사망했고, 하이난섬에 불시착한 미국 정찰기와 승무원 24명은 중국군에 억류됐다. 미·중 관계가 1979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긴장 국면에 놓였으나,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미안하다'(sorry)는 애매한 사과 표명을 받고 승무원들을 풀어주고 정찰기도 해체해 미국에 돌려줌으로써 사태를 봉합했다.

이 사건 이후 당시 주룽지 중국 총리가 언론 인터뷰에서 미·중 관계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논평을 한 것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중·미 관계는 아무리 악화되어도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아주 나빠지는 게 아니고, 좋아져도 아주 좋아지는 건 아니다.” 대강 이런 취지의 발언이었다. 장쩌민(江澤民) 주석 등 중국 지도부가 "기다리며 힘을 기르라"(韜光養晦)는 덩샤오핑의 유언 같은 외교 지침을 실용주의적으로 잘 따르고 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당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국가적 과제로 정하고 미국에 사정하다시피 할 때였다.

2021년의 중국은 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한 세대에 걸친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을 성취하며 국민총생산(GDP) 기준으로 이미 10년 전 일본을 제쳤고, 앞으로 10년 안에 미국도 앞지를 것이 예상된다. 코로나19를 통제하고 플러스 성장에 고무된 중국은 기세등등하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공공연히 미국을 ‘제국주의 쇠퇴’에 빗대며 도광양회(韜光養晦)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있다.

지난 18일과 19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미·중 최고위급 외교당국자 회담이 열렸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미국과 중국 간 첫 공식 회담으로 상호 탐색전의 성격이 강한 만남이었다. 중국 측에서는 양제츠(楊潔篪) 국무위원과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참석했다. 양제츠는 주미대사와 외교부장을 지낸 베테랑 외교관이자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중국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인물이다.

미국 측에서는 앤서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함께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이 참석했다. 안보보좌관이 국무장관과 나란히 회담 대표로 나온 ‘2+2회담’을 두고 미국 언론도 특이한 일로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국문제에 대한 고뇌와 개입 의지를 강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알래스카 회담은 언론의 표현대로 ‘신(新)냉전’ 기류를 여실히 반영한 듯했다. 약속된 기조연설 시간 20분을 훌쩍 넘겨 1시간 동안 날 선 말 펀치 공방을 벌였다.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회의가 시작되자 홍콩민주화운동 탄압,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 탄압, 대만에 대한 위협, 미 동맹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 미국에 대한 사이버공격 등을 겨냥하여 중국을 공격했다. 특히 법에 의거해 만들어진 국제질서를 중국이 위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국과 동맹국의 이익을 지킬 것”이라는 말로 바이든 정부의 동맹복원의 의지를 과시했다.

양제츠 중국 국무위원은 민주주의와 인권문제를 내세운 미국의 주장에 “미국엔 미국 스타일의 민주주의가 있지만 중국엔 중국 스타일의 민주주의가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는 흑인 인권운동을 언급했다. 미국 역사의 뿌리 깊은 흑인 인권문제에 미국 국민들의 불만이 많은 걸 지적하고 있지 않느냐고 미국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반박했다. 또 미국이 말하는 법에 의한 국제질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소수 국가 위주의 질서라고 주장하며 중국은 유엔이 정한 국제법질서를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양제츠는 사이버공격과 관련해서도 “미국이 그 분야 챔피언이다”라고 되받아쳤다.

중국과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 부딪친 입장차는 향후 국제무대에서 갈등과 충돌의 지점이 어디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중국은 홍콩, 위구르,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문제로 다른 나라의 간섭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홍콩 위구르 대만 문제는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중국의 내부문제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뉴욕타임스의 분석에 의하면 이번 회담의 날 선 대치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 국내 정치용으로 유용했다는 것이다. 미국에 당당히 맞서는 중국대표단의 회담 모습이 SNS를 타고 중국내 큰 반향을 일으킨 게 중국지도부에는 긍정적이었고, 미국 대표단이 중국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한 것은 상원 공화당 의원들에 호감을 주어 미국의 전통적 초당외교 기반을 조성하는 효과를 얻게 되어 바이든 대통령의 입지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던 모든 대내외 정책을 스스럼없이 내던져 버렸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인 중국 전략에서만은 두 달 넘게 입장을 내놓지 않다가 이번 최고위급 외교당국자 회담을 통해 그 기조를 천명한 셈이다.

요약하면 미국의 대중 강경노선이 트럼프에 이어 계속될 것이며 이는 곧 미·중 ‘신냉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냉전은 냉전이지만 핵무기 경쟁을 토대로 한 과거 ‘미·소 냉전’과는 양태가 달라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미·소 냉전은 핵무기 중심의 군사적 대치로 세계를 양대 진영으로 갈라놓았으나, 중·미 신 냉전은 경제력과 기술력이 좌우하는 대결로 기술경쟁과 사이버 충돌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으로 본다. ‘화웨이’의 5G통신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그 하나의 예다.

중국과 미국이 벌이는 신냉전도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큰 위험요소다. 하버드대학교의 그레이엄 엘리슨 교수는 그의 저서 ‘예정된 전쟁’을 통해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지금껏 당연시돼 온 미국의 우위에 도전하면서 지금 두 나라는 전쟁이라는 정면충돌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경고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그의 저서 ‘필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라고 서술한 역사적 직관을 말한다.

세계를 몇 번 파괴하고 남을 핵무기를 갖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싫다. 주룽지 전 총리의 말마따나 양국관계는 나빠져도 아주 나빠질 수 없고 좋아져도 그렇게 아주 좋아질 수 없다는 실용적 노선을 찾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전쟁으로 가든 차가운 평화(Cold Peace)가 계속되든 미·중 신냉전은 인류에 고통을 줄 것이다. 특히 외교에서 극도로 분열상을 보이는 한국은 그 고통이 더 심할 것이다. <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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