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귀농은 낭만이 아닙니다. 현실이에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제주에서의 아름다운 귀농생활을 머리에 그리며 취재차 방문한 기자에게 고희권씨(61)가 던진 말이다.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세화리에 있는 고씨의 전원주택에 들어서니 마당에 있는 반려견 3마리가 오랜만에 본 외부인을 반갑게 맞아줬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전직 군인다운 다부진 체격을 지닌 고씨는 낭만적인 귀농얘기가 아니라 솔직하고 현실적인 귀농기를 풀어놨다.

2000여명의 회원이 가입한 제주도귀농귀촌협의회장을 맡아 누구보다 귀농귀촌인들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잘 알고있는 그였다.

물론 그의 직설은 더 나은 귀농을 위한 의견이지 귀농을 하지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고향 전남을 떠나 6년 전부터 제주살이를 하면서 고씨는 '성공'보다는 '실패'한 귀농도 제법많이 목격했다.

귀농귀촌협의회 회원 중 귀농인, 즉 농사를 짓는 경우는 10%에 불과하다.

지금 이순간 귀농 특히 제주에서의 귀농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고씨의 직언을 새겨들어볼만하다.

◇무서울게 없던 특전사, 초짜 농사꾼이 되다
고씨는 2015년 30여년간 몸담은 직업군인(준위)을 퇴임하고 제주에 귀농했다. 고씨의 선택은 제주를 상징하는 감귤이었다.

"직업군인은 공무원보다 퇴직이 빨라요. 50대에 퇴임했는데 아직도 한창 일할 나이잖아요. 고민하다가 당시 유행하던 제주 한달살이를 하러 왔어요. 그게 제주에 터를 잡은 계기가 됐죠"

특전사 부사관까지 지냈을만큼 혹독한 군생활을 견뎌낸 고씨에게 귀농은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농사도 전혀 몰랐죠. 첫해에는 아내없이 감귤 과수원 농막에서 혼자 지냈어요. 깜깜하고 인적없는 과수원에 홀로 있으려니 무섭기도하고 쓸쓸하기도 하더라고요. 허허허"

하지만 역시 군인의 피는 어디가지않았다. 숱한 야전생활과 훈련으로 단련된 고씨는 "그래 더한 훈련도 이겨냈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마음을 다잡고 농사에 매진했다.

어찌어찌 첫 수확에 성공했지만 걱정거리는 끝나지않았다.

"무턱대고 감귤을 30상자나 땄는데 따고보니 어디에 팔아야할지, 어떻게 팔아야할지 난감하더라고요"

고씨는 초짜들이 다 그렇듯 '지인 찬스'를 꺼냈다. 육지에 있는 지인들에게 전화해 30상자 완판에 성공한 것.

이를 계기로 고씨는 감귤 택배에 눈을 뜨게 된다.

"감귤값이 폭락해 10kg에 7000원할때 저는 3만원을 받고 팔았어요. 당시만해도 제주에서는 택배가 아주 활성화된 시절이 아니었죠. 아! 이거구나 싶었죠. 제가 재배한 감귤이 제법 맛이 좋았는지 입소문이나서 사겠다는 사람이 점점 늘더라고요"

지금도 고씨는 자신의 감귤농사도 농사지만 다른 농가의 택배 판매일도 하고있다.

오랜 군 생활 경험과 타고난 리더십으로 그는 제주 귀농귀촌연합회장까지 맡게됐다.
 

◇"땅값 비싼 제주, 생계형 귀농 현실적으로 어려워"
그는 "제주는 전국에서 귀농이 가장 어려운 지역입니다"라고 단언했다.

"우선 제주는 땅값이 너무 비싸요. 정부 귀농지원금이 3억원입니다. 물론 공짜가 아니라 융자에요. 빚을 지는 거죠. 3억이면 1000~2000평정도 되는 땅에 농사를 지어야 수익이 나오는데 제주는 농지가 평당 100~200만원이고 여기에 인건비와 집값까지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갑니다. 여윳돈이 있어서 취미생활하는거보면 모를까 생계를 위한 농사는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그리고 기존 정책이나 지원은 대부분 어느정도 규모가 있거나 수익 창출이 있는 농가에 집중됩니다. 귀농인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불리한 게 사실입니다"

고씨의 쓴소리는 이어졌다.

"최근 몇년간 제주살이 열풍이 불다보니 굳이 행정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인구가 늘어났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타 지역에 비해 귀농귀촌 정책과 지원이 부족해요. 다른 지역 귀농협의회 회원들은 제주라는 상징성만보고 부러워하는데 빛좋은 개살구입니다. 제주에는 귀농귀촌인들을 위한 제대로 된 기관조차 없습니다. 가끔 제주 귀농귀촌인 관련한 조사나 연구가 나오기는 하지만 실상과 거리가 먼 결과가 있었요"

여기에 생소한 지역문화, 원주민들과의 마찰과 소통문제도 귀농인들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실제 제주도의 '2019년 사회조사'를 보면 이주민들은 '제주생활에 적응되지 않은 이유'로 '언어, 관습 등 역문화(33.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지역주민과의 관계'를 택한 응답도 23.4%나 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제주로 귀농한 인구는 511명에서 238명으로 줄어 53.4%감소했다. 전국에서 감소율이 가장 높았다.

◇"귀농인과 주민 상생하자…귀농 환상 벗어나야"
"제가 후배 귀농인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지역주민들이 다가와주길바라지말고 먼저 다가서라고요. 귀농귀촌인들은 전국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이는데 꾸준히 지역에서 재능기부 등 봉사활동을 하고있어요. 귀농인과 지역주민들이 상생해야죠"

고씨는 최근 동네 일꾼인 주민자치위원에 선출됐다. 지역주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귀농인들에게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를 알고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다.

고씨는 귀농인들의 장점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꼽았다.

"제주 농산물을 전국 각지에 알리는 데 귀농인의 인맥과 경험을 활용했으면 해요. 그러려면 기존 귀농인들의 기반이 탄탄해야 합니다. 새내기 귀농인을 교육하고 멘토 역할하는 구조가 순환해야해요"

그는 새내기 귀농인들을 향해 재차 귀농은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귀농이라는 아름다운 환상에 젖으면 안됩니다. 우선 한달살이 등을 통해 자신이 뭘 할지, 뭘 할 수 있는지를 직접 보고 생활해봐야해요. 무턱대고 와서는 실패만 맛보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귀농을 결정했다면 관련 기관과 단체 등에서 교육을 받고 충분히 정보를 얻고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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