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제주 4중 추돌사고 구간은 그동안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내리막길이라는 점에서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제주도소방안전본부와 제주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5시59분쯤 8.5톤 화물트럭이 시내버스 2대와 1톤 트럭을 잇따라 들이받아 3명이 숨지고, 59명이 중경상 사고가 발생한 곳은 제주시 중앙로 초입이다.

한라산 성판악탐방안내소에서 시작되는 516로와 이어지는 중앙로는 제주대학교 앞 사거리와 제주시청을 거쳐 제주해변공연장까지 이어지는 약 8㎞ 구간의 내리막길이다. 최대 경사도는 약 7%다. 각도로 보면 약 4.0도 수준이다.

화물트럭 운전자 A씨(41)는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한라봉 등을 싣고 출발해 평화로와 산록도로, 어승생악, 관음사를 거쳐 516로에 먼저 진입했다. 목적지는 제주항이었다.

인근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A씨는 사고 직전 516로변에서 비상등을 켜고 20초가량 정차하기도 했으나 곧장 경적을 울리며 빠른 속도로 중앙로 초입에 있는 제주대학교 앞 사거리로 진입해 사고를 냈다.

현재 경찰은 A씨가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진술함에 따라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과열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브레이크 이상 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문제는 중앙로에서 이 같은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10년 1월23일에는 경북 구미시의 한 중학교 축구선수단을 태운 버스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편에 있던 승용차와 오토바이를 잇따라 들이받은 뒤 도로변에 있던 상가로 돌진한 바 있다. 당시 이 사고로 학생 1명이 끝내 숨지고 3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었다.

지난 2014년 8월13일에는 생수를 실은 화물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택시와 승용차 2대를 잇따라 들이받기도 했다. 이 사고로 택시 운전사와 택시에 타고 있던 승객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었다.

지난 2017년 7월8일에는 주행 중이던 화물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도로 옆 임야로 추락해 전도되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보행자는 없었고 운전자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해당 사고들의 공통점은 사고를 낸 운전자들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하나같이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진술했다는 점이다.

516로나 중앙로와 같은 긴 내리막길에서 풋 브레이크를 지나치게 자주 사용하면 마찰열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경우 브레이크 오일에 기포가 생겨 브레이크가 잘 작동되지 않거나(베이퍼 록·Vapor Lock) 마찰열 때문에 라이닝이 변질돼 브레이크가 밀리는 현상(페이드·Fade)이 발생할 수 있다.

사고 원인 조사 결과 해당 사고들은 모두 두 현상으로 벌어졌던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산간인 516로부터 시작되는 내리막길인 중앙로에서 또다시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고 사상자도 62명에 이르자 지역사회에서는 조속히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제주대학교는 8일 보도자료를 내고 제주도와 제주경찰청 등 유관기관에 Δ버스정류장·횡단보도 위치 조정 Δ과속단속카메라(구간단속 실시) 설치 등 과속방지 조치 Δ초대형 화물차 516로 운행 금지 등의 후속조치를 건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경준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장도 뉴스1과의 통화에서 "3~4년에 한 번씩 학교 앞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했었는데 이번에도 큰 사고가 났다"며 "내부 논의를 거쳐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의견을 낼 생각"이라고 했다.

시민단체인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시민들'도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제주 4중 추돌사고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다"며 "제주도는 교통행정의 무능과 패착을 사과하고 이제라도 안전대책을 제대로 수립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전날 사고대책본부를 꾸린 제주도는 이 같은 여론에 기형적 도로나 사고 다발 지역에 대한 대책 마련에도 착수한 상태다.

사고대책본부장인 최승현 제주도 행정부지사는 "이번 사고를 당한 유족을 비롯한 피해자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피해자 안내와 지원 등에 맡은 바 임무와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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