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여름까지 제주대학교 사거리에는 높이 20m, 수령만 130년에 달하는 소나무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0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며 제주시 상징물로 불렸던 이 소나무는 2007년 8월 순식간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른바 농약 살포 사건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곳이 바로 지난 6일 사망자 3명을 포함, 총 62명의 사상자를 낸 제주대입구 사거리 연쇄 추돌사고가 발생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지난 10년 내 제주도 내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하자 십수년 전 고사한 이 소나무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나무가 존재했을 때만 해도 이곳은 회전교차로가 있었다. 회전교차로 구간에서는 대체로 차량들이 속도를 줄이고 서행 운전을 하기 마련이다. 만약 그 소나무가 말라 죽지않고 회전교차로가 계속 남아 있었다면 수십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겠냐는 이유에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소나무가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농약살포 사건은 이 일대 도로 확장 사업이 진행되던 2006년 발생했다.

제주시는 2005년부터 5·16도로 목석원에서 춘강복지관 사이 1.7㎞에 이르는 도로를 확장하기로 결정하고, 사거리 중앙에 위치한 소나무를 두고 고심을 거듭해왔다.

당시 소나무를 없애 도로를 직선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했으나 시는 2006년 11월 소나무를 존치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소나무 존재와 관계 없이 서쪽 방향으로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를 만드는 공사에 착수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소나무 밑동에 3개의 구멍을 뚫어 농약을 투입하는 일이 일어난다.

당시 제주도보건환경연구원이 밑동에 나 있는 구멍 3곳에서 시료를 채취해 검사한 결과 제초제 성분이 검출됐다.

이듬해 3월부터 서서히 고사현상이 진행되기 시작한 소나무는 이 사건 이후 8개월만에 결국 말라죽고 말았다.

제주시는 고의적인 농약 살포 정황을 파악한 후 현상금 200만원을 내걸고 범인 수배에 나섰으나 끝내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이 같은 농약 살포 사건 후 시는 소나무 터를 제거하고 도로를 직선으로 확장해 지금의 6차선 도로가 만들어지게 됐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제주대사거리 연쇄 추돌사고를 계기로 회전교차로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시민단체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시민들'은 8일 성명을 내고 제주대사거리 회전교차로를 부활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들은 "속도를 내며 달려오던 차량이 소나무가 있는 회전형교차로를 만나며 점차 속도를 줄였으므로, 회전교차로가 있던 동안 사망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며 "사고지역의 신호교차로를 회전교차로로 바꾸고 제주대입구 전의 일정 구간부터 시속 40㎞ 이하로 속도를 제한하라"고 주장했다.

홍명환 도의원(제주시 이도2동 갑·더불어민주당) 역시 사고발생 직후 SNS에 "이곳 도로를 6차선으로 확장하면서 회전교차로를 없애버린 것이 (사고의) 치명적인 원인"이라며 "2009년부터 도내에 70여개의 회전교차로를 만들었으나 제주대 입구는 원상복구되지 않았다. 도심 모든 교차로를 회전교차로로 교체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는 최근 10년간 회전교차로 운영 성과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0∼2018년 회전교차로가 설치된 476곳을 대상으로 설치 전 3년과 설치 후 1년간 교통사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교통사고는 설치 전 평균 817건에서 설치 후 615건으로 24.7% 감소했다.

교통사고 사상자는 설치 전(1376명)보다 33.1% 감소한 921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사망자는 17명에서 4명으로 76% 급감했으며, 중상자는 431명에서 257명으로 40% 감소하는 등 중대 사고가 큰 폭으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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