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9일) 제주공항 탑승 대기실은 아침 9시부터 관광객들로 그 넓은 공간이 꽉 찼다. 탑승 후에도 '관제탑으로부터 이륙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내 방송을 몇 차례 들어야 했다. 아마 착륙하는 비행기들도 순서를 기다리느라고 하늘에서 한참 빙빙 돌아다녔을 것이다.

어린이날 연휴를 제주에서 보낸 관광객들이 뭍으로 돌아가는 날이어서 그렇게 붐볐던 것 같다. 주말인 1일과 2일 이틀간 제주에 도착한 관광객이 8만5000여 명, 어린이날에 도착한 관광객은 4만50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사실 공항에 어린이는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지구촌 곳곳에서 관광산업은 붕괴 상태건만, 제주도에서 본 것은 전혀 다른 광경이다. 해외로 나가지 못한 관광객이 대거 제주도로 몰리면서 유명 관광지의 주차장은 주차할 틈이 없었고, 골프장 예약은 동났고, 렌터카 회사는 티코 한 대 대여비로 하루 15만원을 받았다. 이쯤되면 제주 관광은 '코로나19 불경기'를 졸업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코로나 사태가 더 악화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하는 얘기다.

코로나19 타격이 컸던 작년 제주 관광객은 1023만 명이었다. 2019년 1528만 명에서 33% 감소했다. 제주 관광객 숫자가 정점을 이뤘던 것은 중국 관광객 붐이 한창이던 2016년 1585만명이었다. 사드 사태와 코로나19로 제주 관광산업이 지난 4년간 타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관광객 1000만 명 선을 유지한 것은 그래도 선방한 게 아닐까.

제주도와 자주 비견되는 하와이의 작년 관광객은 270만 명이었다. 2019년 10 42만명에서 무려 74%나 감소했다. 하와이 관광청에 의하면 1975년 이후 연간 관광객이 300만 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제주도와 비교하면 하와이 관광 산업은 초토화된 셈이다.

올해 5월초까지 제주도를 찾은 누적 관광객수는 338만명으로 작년 한 해 하와이 관광객수보다 훨씬 많다.

제주 지역 관광업계에겐 일단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지역전체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관광객이 많아졌다고 안심하고 좋아하기만 하기엔 뭔가 미흡함이 있다. 그 동안 제기됐던 과잉관광에 대한 충분한 자성의 기회와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여행객들이 다시 몰려들기 때문이다.

과잉관광은 자연 파괴, 차량증가에 따른 교통체증 및 사고, 쓰레기와 하수처리 문제, 범죄 증가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관광객들의 사려깊지 못한 행태로 주민들의 생활리듬이 깨지고 있다는 불만도 많았다. 관광업과 직접 연관이 없는 주민들은 관광객 증가가 항공사 고급호텔 쇼핑센터 대형 식당의 배만 불려줄 뿐 일반 주민에겐 불편만 주고 있으니 관광객이 반갑지 않다는 반응도 있다. 그래서 팬데믹에 의한 관광업의 침체가 과잉관광에 대한 반성과 대안 모색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면 하와이에선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얼마전 뉴욕타임스가 팬데믹이 하와이 관광에 끼친 영향과 주민들의 반응을 상세히 취재 보도했다.

하와이 관광계는 과잉관광(over-tourism)에 대한 반성과 함께 대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하와이 관광청이 주민 1000명을 상대로 관광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더니 주민 3분의 2가 "관광객이 옛날처럼 많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자연이 많이 훼손되고,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물가가 상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와이 주민들도 제주도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과잉관광에 대한 불만이 많다.관광객 감소로 소득이 줄어든 건 걱정이지만 자연환경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강하다. 하와이 사람들은 관광객이 얻어가기만 할 뿐 남기는 것이 없다고 불만이다. 남긴다는 것은 경제적인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뉴욕타임스 기사를 보면, 관광에 대한 하와이 주민들의 사고 유형은 3개 집단으로 나뉜다. 첫째 집단은 관광산업 반대론자들이다. 이들은 하와이가 관광으로 파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진흥을 하는 주 관광청을 특별한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조차 싫어한다.

둘째 집단은 관광산업을 계속 유지·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람들이다. '관광은 하와이 경제의 혈액이며 삶의 기반이니 관광객이 더 많이 찾아와야 한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셋째 집단은 첫째 집단과 둘째 집단의 중간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와이는 지역주민들이 살기 편한 곳이 되어야 하며, 관광산업이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와이가 전 세계인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은 자연자원이다. 하와이의 아름다움은 해변, 수많은 국립 및 주립 공원, 청정한 공기 속에 배어 있다. 주민들의 걱정은 이런 자연이 과잉관광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반성을 토대로 땅과 주민공동체가 보전되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관광객에게 하와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댓가로 관광객들도 하와이의 자연과 공동체를 잘 키우는 관광행태가 정착되도록 정책적 보완이 이루어지기를 주민들은 바라고 있다. '알로아'(환영합니다)정신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자는 것이다.

하와이 원주민이 청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하와이 관광청도 작년 5개년 관광 전략계획을 수립했다. 그 계획은 자연자원, 하와이문화, 주민공동체, 브랜드마케팅을 4개의 기둥으로 삼고 있다. 관광이 하와이에서 뽑아먹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민 공동체에 창조적으로 돌려주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원주민의 토속 문화를 새롭게 잘 키우는 것도 방법의 하나다. 관광청이 앞서서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수렴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와이는 관광산업의 본질적인 체질 개선을 시도하는 것 같다. 또 사람이 찾아오지 않을 때 주요 관광지 낡은 시설를 개보수하고 관광지 운영 시스템도 개선한다. 또 하와이 전통산업인 농업과 관광을 연계시키는 에코투어리즘의 발전도 활발히 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과잉관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세계의 유수 관광지들이 하와이의 움직임 속에서 어떤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암시했다.

하와이나 제주도나 과잉관광에 대한 고민은 비슷한 것 같다. 다만 하와이 관광객이 격감한 것에 비해 제주 관광객 숫자가 급속히 회복되는 것이 다르고, 중국 관광객의 복귀 여부가 제주 관광산업의 큰 변수로 남아 있다. 과잉관광의 부작용은 오히려 제주도에서 더 크게 나타날 잠재성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제주도는 과잉관광에 대한 반성과 체질개선의 노력이 더 절박한 것 같다. 하와이에서 얻을 교훈이 있을 것이다.<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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