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페이지. 1650명의 이름. 피고측 주장 무죄. 판결 사형.

1998년 12월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에서 발견된 먼지 쌓인 종이뭉치에는 알 수 없는 이름만 나열돼 있었다. 바로 제주4·3수형인 명단이었다.

명부를 최초 발굴한 김재순 국가기록원 나라기록관 관장은 “내용이 특이해 눈길이 갔다”고 한다. 당시 정부기록보존소 연구직이었던 그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 문서를 눈으로 확인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김 관장은 16일 뉴스1 제주본부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서울에서 마이크로필름으로 저장된 문서를 봤다”며 “사람 이름이 쭉 나오는데 내용은 굉장히 간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한꺼번에 100여 명씩 재판을 하면서 한 달 안에 선고까지 끝났더라”며 “정식 판결문도 따로 없이 중간중간 재판 요약만 간단히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김 관장은 직접 확인하기 위해 부산에 있는 서고로 달려갔다. 1970년대 제주지검에서 이관한 문서 사이에서 수형인 명부를 찾을 수 있었다.
 

“명부를 보면 볼수록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당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무작위로 체포하고 죽였구나, 말 그대로 무고한 양민 학살이었구나 알 수 있었다.”

김 관장이 최초 발굴한 명부에는 1948년 12월부터 1949년 7월까지 군법회의를 받은 1650여 명의 이름이 있었다. 이후 찾은 명부까지 포함하면 총 2530명의 수형인 이름이 확인됐다.

그동안 아무도 관심갖지 않던 이 문서는 제주4·3당시 불법 군법회의가 어떻게 자행됐는지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또 1999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공공기록물법)’,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4·3특별법)’ 제정의 단초가 됐다.

“세상에 공개해 이 사람들의 억울함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관장은 사회 분위기상 정식 공개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가 찾아간 곳은 판사 출신의 추미애 의원실이었다. 수형인 명부 마이크로필름의 복사본도 준비했다.

“불법적으로 처형된 사람들의 기록으로 보인다. 원본이 부산에 있으니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어떻겠냐”는 그의 말에 추 의원은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를 찾았다.

김 관장은 수형인 명부 원본을 꺼내 추 의원에게 내용을 소상히 설명했다. 1999년 9월의 일이었다.
 

김 관장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도 발굴해 공공기록물법 제정에 앞장섰다. 관련 시행령 제정을 추진하면서는 제주4·3수형인 명부를 근거로 기록물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주변에서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수형인 명부를 공개함으로써 기록이라도 있어야 국민의 생명권도, 재산권도 지킬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주도의회는 4·3수형인 명부를 최초 발굴한 김 관장의 공로를 인정해 제주명예도민으로 선정할 예정이다.

관련 안건은 15~30일 열리는 제396회 제주도의회 정례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그를 명예도민에 적극 추천한 강성민 도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이도2동 을)은 “김재순 관장은 4·3수형인 명부를 최초로 발견하고 추미애 의원에게 전달한 인물”이라고 밝혔다.

강 의원은 “그가 공개한 명부는 국민들이 4·3의 진실을 이해하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최근 수형인 관련 재심을 청구하는 근거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3월16일 제주4·3수형인 중 335명은 70여 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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