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껄로 주세요.”
주문이 끝나면 냉장고 밖에서 보관 중이던 소주가 상 위로 올라온다.
상온에 있는 소주가 시원할 리 없지만 제주에서는 미지근한 ‘노지 소주’만 찾는 사람들이 많다.
제주도민들이 소주를 부르는 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상온 상태의 소주는 ‘노지’, 도수가 높은 투명병의 오리지널 한라산 소주는 ‘하얀 거’, 도수가 낮은 초록색 병의 한라산 올래 소주는 ‘파란 거’로 불렸다.
한라산 소주는 디자인을 리뉴얼해 21도와 17도 제품 모두 투명한 병으로 통일됐지만 ‘하얀거 노지’를 찾던 사람들은 여전히 ‘노지 소주’를 사랑한다.
‘노지’는 통상적으로 과일 등 농산물 앞에 붙여 사용한다. 보통의 밭에서 재배하는 귤을 ‘노지감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슬 로(露)에 땅 지(地)를 써 이슬을 맞으며 땅에 있는 상태를 표현한 ‘노지’의 사전적 의미는 지붕 따위로 덮거나 가리지 않은 땅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노지 소주는 땅 위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한 소주인 셈이다.
온도가 낮아질수록 알코올의 자극이 덜해 소주의 맛이 덜 느껴진다는 것이다.
실제 2012년 한 주류회사에서는 소주가 가장 맛있을 때는 냉장고에서 방금 막 꺼낸 상태보다 8~10도 정도로 온도가 올라간 두 번째 잔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너무 차가운 상태로 마실 경우 찬 기운으로 인해 혀 감각이 무뎌져 소주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래서인지 ‘노지 소주’만 마시는 이들은 차가운 소주보다 미지근한 소주가 오히려 알코올 향 때문에 천천히 마시게 돼 적당히 즐기기 좋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소주를 상온에 보관하다 마시는 문화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소주가 상대적으로 온도 변화에 강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소주는 발효주와 달리 유통기한이 따로 없다. 도수가 높고 변질될 만한 재료가 따로 없는 증류주이기 때문이다.
다만 제주에서 노지 소주를 언제부터 왜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어떤 소주를 즐길지는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는 때를 알고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음주문화가 절실하다.
(제주=뉴스1) 홍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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