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대에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기업이 자동차 메이커일 것이다. 100년 이상 석유시대를 구가했던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들이 '2050년 탄소중립'으로 받는 압박감은 가히 생존의 위협이라 할 만하다. 특히 미국 자동차업계의 위기감이 가장 심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자동차의 나라다. 세계 최초로 순수전기차(EV) 대량 생산의 발동을 건 것도 미국의 테슬라다. 그럼에도 미국의 친환경차 보급 속도는 유럽과 중국에 뒤처져 있다.

기후위기를 일찍이 느꼈던 유럽은 전기차 등 친환경차 선호도가 강하고, 중국은 뒤떨어진 자동차 산업의 만회 기회를 전기차 생산과 보급에 걸고 공산당 정부가 앞장서서 지원에 나섰다. 시장 논리에 맡겼던 미국의 친환경차는 지난 4년간 트럼프 정부의 기후변화 무시 정책으로 시간을 허송하며 결정적 시기를 놓쳤다. 미국의 친환경차 시장규모는 3% 정도다. 유럽의 17%에 크게 뒤져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런 추세를 뒤엎겠다며 팔을 걷어부쳤다. 지난 8월 5일 GM 포드 스텔란티스(크라이슬러 모기업) 등 미국 빅3 자동차 최고 경영자를 백악관으로 초대해서 "2030년까지 미국 시장에서 팔리는 신차의 50%가 전기차 등 친환경차가 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이 자리에서 이런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행사를 치렀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행동은 느닷없는 일은 아니다. 올해 1월 20일 취임하면서 파리기후협약 복귀와 '2050년 탄소중립'(Net-zero)을 선언했고 2035년까지 발전 분야에서 탄소배출을 '0'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조치의 노림수를 놓고 미국 언론은 두 가지 의미를 강조한다. 첫째가 기후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고, 둘째 의미는 지정학적인 것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전략적 제품의 공급망 장악 조치를 취했던 것과 같은 차원에서 중국에 전기차 우위를 내주면 안 된다는 의도가 있다.

어쨌든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 또는 말 한마디는 세계 자동차메이커를 비롯한 관련 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의 연간 판매 규모는 약 1500만 대다. 잠자던 미국의 친환경 자동차 시장이 깨어나면 전기차를 생산하는 전 세계 자동차 회사들이 시장확보를 위한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흥미롭게도 전기차를 강조한 백악관 행사에 전기차를 상징하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초대받지 못했다. 머스크도 "테슬라가 초대받지 못하다니 이상하다"고 불만을 페이스북에 피력했다. 일부 미국 언론들은 노조를 반대하는 테슬라의 경영 방침이 바이든 대통령의 친노조 성향에 거슬렸기 때문이라며 테슬라가 받을 불이익을 거론하기도 했지만,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 이상은 아니라는 관측이 지배적인 것 같다.

뉴욕타임스도 바이든의 전기차 진흥책 수혜자는 전기차에 전력 질주하는 테슬라나 올해부터 판매에 나서는 리비언(Rivian) 같은 순수 전기차 스타트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에 미국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 메이커들의 고민은 크다. 전기차 시장은 미래의 기대 수익이 있는 곳이지만, 당장의 이익 구조는 내연기관 차에 있기 때문이다.

GM 등 미국의 빅3는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치에 동조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렇지만 내심은 복잡하다. GM은 2035년에 탄소제로 자동차만 생산한다고 이미 선언했지만 현재 전기차 판매는 2% 내외다. 스텔란티스는 전기차를 출시해보지도 않았다. 미국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보조금, 세제혜택, R&D 지원 등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사실 테슬라도 오바마 정부의 재정 지원이 성공의 결정적 요인이었음이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땅에서 미국 노동자들이 만드는 전기차'를 강조하지만, 세가 만만찮은 공화당 상원의원들 상당수가 석유 석탄에서 벗어나려는 전기차에 호의적이지 않다.

전기차와 관련하여 자동차 산업계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일본의 토요타다. 친환경차 분야에서 언제나 선두주자였던 토요타가 전기차 모델개발에는 지각생이다. 호의적이지 않다. 바이든의 행정명령에 마지못해 찬성하는 논평을 냈지만, 토요타가 굉장한 전기차 딜레머에 빠졌다는 게 자동차 분석가들의 견해다.

토요타의 전략은 하이브리드 차와 수소차를 두 축으로 삼고 있다. 미래를 위해서는 수소차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당분간은 배터리와 내연기관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차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전기차 모델개발에 소극적일뿐 만 아니라 올해 임원이 워싱턴을 방문해 미의회 의원은 물론 의회관계자들을 상대로 전기차 견제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브리드 차 '프리우스'(Prius)의 큰 성공이 토요타의 전기차 개발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유력하다.현대차도 수소차 개발에 공을 들이지만 재빨리 전기차모델을 개발한 것과 대조적이다.

전 산업분야가 그렇지만 자동차 산업은 '탄소중립'이라는 패러다임의 대전환 와중에 몰려있다. 미국 대통령이 그 촉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의 대세는 전기차다. 앞으로 5년 후 또는 10년 후 바뀌어 있을 자동차 산업의 지도가 궁금하다.

테슬라가 친환경차 시대의 총아로 계속 앞서갈 것인가. 미국의 빅3 자동차 회사들은 어떻게 부침할까. 자동차엔진 기술의 정수를 보여줬던 독일차들은 전기차 시대에도 그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중국은 성장하는 거대 국내 시장을 토대로 좋은 전기차를 만들어 수출하며 20세기 미국의 차지했던 자동차 왕국의 지위를 구축할 수 있을까. 똑 같이 수소차를 개발하면서, 하이브리드에 집중하려는 토요타와 전기차 모델개발에 적극 나선 현대자동차의 운명은 각각 어떻게 될까.<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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