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또 뉴스를 만든다. 5000억 원을 중국의 전기자동차 제조회사 비야디(BYD)에 투자하여 지분 2%를 확보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뭘 하자는 생각인지 업계의 신경이 곤두설 것 같다. 전기자동차 사업에 본격 발을 담그겠다는 신호인가, 아니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우호적 ‘바이차이나’(Buy China) 전략으로 나타난 것일까.

지난해 3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2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를 구경하던 한국 관객들은 전시장 구석에 서 있는 'e6' 모델 승용차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이 차를 보고 신기해한 이유는 첫째 1회 충전으로 300㎞를 주행할 수 있다는 점, 둘째 중국산이라는 점, 셋째 디자인이 선진국 자동차 못지않게 꽤 세련된 점 때문이었다.

“테슬라도 아니고 중국 전기차가 이럴 수가…” 자동차 업계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주행거리였다. 전시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닛산의 ‘리프’, BMW의 'i3', 기아의 ‘소울’, 르노삼성의 ‘SM3 ZE’ 등 익숙한 전기차 모델의 1회 충전 주행거리가 모두 150㎞ 내외였기 때문이다. 모두들 ‘e6’의 배터리 성능에 혀를 내둘렀다.

올해 3월 제3회 엑스포에는 중국에서 온 전기버스 'K9'가 전시됐다. 1회 충전 주행거리 300㎞인 이 전기버스를 타 본 사람들은 “소음이 없고, 승차감이 좋다”고 한마디씩 했다.

‘e6’와 'K9'를 만든 자동차회사가 바로 비야디(BYD)다. 아직 한국인들의 귀에 익지 않은 BYD가 10년 후에는 GM, 토요다, 벤츠가 쌓았던 것과 같은 세계적 명성을 얻을지 모른다. 삼성전자에 한참 앞서 2008년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2300만달러를 들여 BYD 지분 10%를 사들인 것은 이런 예견에서일까.

오늘날 중국 전기차 산업의 성장은 비약적이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중국은 전기차 세계시장 점유율에서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런 내수시장 덕택에 BYD도 전기차 판매량에서 테슬라와 닛산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중국 전기자동차 산업의 고속 성장에는 밑거름이 있다. 즉 내수 시장과 정부의 자동차 산업 전략이다. 중국은 13억 인구를 가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다. 기후변화 및 대기 오염 문제로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반면, 친환경 자동차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런 전환기를 맞아 내연기관 자동차에서는 후발주자였지만 전기자동차 산업에선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게 중국의 전략이다. 중국은 전기차 산업 육성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省)의 조율 아래 보조금과 충전인프라 등 행정적 지원 등 각종 장려정책을 펼치고 있다.

전기자동차는 세계 산업계의 뜨거운 이슈다. 아직은 판매가 소소하지만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와는 다른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내년 하반기에 출시하겠다며 내놓은 ‘모델3’에 무려 40만 명의 예약자가 몰린 것이나,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전기차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것은 시장 변화의 징후다.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을 자처하는 한국의 전기차 산업의 형편은 어떤가. 2년 전 기아의 ‘소울’에 이어 올해 현대자동차가 ‘아이오닉’모델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별로인 것 같다.

정부는 올해 1대당 1200만원의 보조금을 주기로 하고 8000대의 전기차 보급계획을 세워 각 시도에 배정했다. 지방자치단체 지원금 800만원 내외를 합치면 차 1대에 나가는 보조금이 무려 2000만원쯤 된다. 현대차가 올해 내놓은 ‘아이오닉 일렉트릭’ N트림의 대당 가격은 4000만원이다. 소비자가 2000만원만 내면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전반기 국내 전기차(외국브랜드 포함) 판매는 800대를 밑돌았다. 정부 목표의 10% 미달이다. 정부는 제주도를 전기차보급 테스트베드로 잡고 공을 들였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년 전 취임하면서 2017년 제주 도내 차량 3만대, 2030년 예상 차량 35만대를 전부 전기차로 교체하는 ‘탄소제로섬2030’프로그램을 선언했다. 작년 12월 파리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195개국 정상이 참석한 회의에서 이 프로그램을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정부가 보급하기로 한 전기차 8000대 중 절반인 4000대를 제주도에 배정됐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제주도에서 팔린 전기차는 400대가 채 안 됐다. 정부는 최근에야 부랴부랴 보조금을 1400만원으로 올리고 충전소 설치를 발표했지만 올해 8000대를 소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쯤 되면 올해 전기차 보급계획은 재앙적 실패다. 이웃나라 중국은 날고 있는데 한국은 기고 있는 꼴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정부나 자동차산업계가 미래를 읽지 못하고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내연기관 자동차의 성장에 너무 안주하고 있었던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정부가 너무 늦게 전기자동차에 관심을 가졌고, 자동차 메이커 역시 미래 예측에서 빗나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앞을 내다보아도 당분간 전기차를 대치할 친환경 차량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정책결정이 늦었을지라도 정부가 신념과 절박함을 안고 집중력 쏟으면 업계도 변하고 국민의 소비행태도 변할 것이다. 전기차를 쉽게 만들 환경, 전기차를 용이하게 쓸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전기차 개발에서는 뒤졌지만 배터리 분야에선 세계적 기술과 생산능력을 갖춘 LG화학과 삼성SDI가 미국과 독일의 주요 자동차메이커들과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고 있다.

두 회사는 1년 전 중국에 공장을 짓고 중국 전기차 시장에 대비했다. 그런데 중국 당국이 얼마 전 '4차 전기차 배터리 모범규준 인증업체'를 발표하면서 LG화학과 삼성SDI를 제외했다.

중국 당국의 조치는 무엇을 뜻하는가.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와 중국의 배터리가 기술체계가 다르다는 점에서, 중국이 한국배터리 산업을 견제하려는 심산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 개발과 보급에서 앞서나가고 있고 배터리개발에도 투자를 하고 있다. BYD도 배터리제조 회사로 시작했다. 중국은 배터리 분야에선 한국 기업을 견제할지 모른다.

한국과 중국은 협력과 견제의 관계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여기서 세계적 에너지 전문가 다니엘 예르진이 2011년 출판한 책 ‘더 퀘스트’(The Quest)에서 설파한 인상적인 한 구절을 떠올려본다.

"전기자동차 산업은 국가 간 게임이다. 배터리는 과거의 석유와 같다. 배터리 기술의 승자가 세계 경제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 같은 국가에게는 전기자동차가 결정적인 성장분야로 지배적 위치를 확보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의 정부와 기업은 이 기회를 잘 살리고 있는가. <뉴스1 고문>
저작권자 © 뉴스1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