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제주의 '골목과 시장'이 변했다. 조용했던 거리가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고 볼거리가 늘면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거리들과 맞닿아 있는 전통시장(상점가)도 옛 정취에 문화.예술이 더해지면서 이색적인 즐거움을 준다. 제주여행에서 그냥 지나치면 아쉬움이 남는 골목길·전통시장을 소개한다.

농촌의 오일장은 항상 그렇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손님을 끄는 상인들의 호객소리, 물건값을 흥정하는 소리가 시끌벅적하다.

그렇다고 농촌의 오일장은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시장의 역할만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구경, 물건구경에다 돌아가는 동네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서 열리는 세화오일시장. 제주시 동부권에서 가장 큰 시장이다. 1500평(4700㎡) 안팎의 부지에 150개 점포가 입점해 영업중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내의 오일장에 비하면 '아담'하게 느껴졌다.

그리 많지 않은 정보만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15일 세화오일장을 찾았다. 세화오일장은 매달 5일, 10일, 15일, 20일, 25일, 30일 장이 선다.

차에서 내려 세화오일장 입구까지 가는 길. 100m도 채 안되는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바다내음을 담은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600곳에 가까운 전국 오일장 중 해안을 끼고 있는 오일장이 몇 곳이나 될까. 시원한 바다 풍경이 시장 구경 재미를 더한다.

해안을 끼고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한 탓에 최근에는 제주의 바다 풍경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부쩍 더해져 오일장 이용객이 늘었다고 한다.

세화오일장 입구에 다다르면 '해녀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시장 입구에 웬 해녀조형물인지 이유가 궁금했지만 조형물 아래 표지를 보자 고개가 끄떡여졌다.

세화오일장은 1930년대 최대규모의 항일운동이자, 여성이 최초로 주도한 항일운동인 '제주해녀항일운동'의 총궐기 당시 시작점이다.

1912년 구좌읍 하도리 별방진에 있던 '세화오일장'은 수차례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 1983년 현재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장이 서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예나 지금이나 시골장터에만 있는 구수함과 넉넉한 인심은 그대로다.

'시장에는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말마따나 세화오일장에도 반찬거리부터 신발, 의류, 약초, 과일, 공예품, 간단한 간식까지 한 곳에서 살 수 있다. 어물전은 제법 볼만하다.

특히 해녀들의 필수용품인 '해녀 전용 수경'과 작업도구들은 대표 상품이다.

세화오일장의 가장 큰 특이점은 운영시간이다. 점심이 지나면 파장 분위기다. 세화오일장을 제대로 즐기려면 조금 부지런해야 한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다. 언제 장이 열렸는가 싶을 정도다.

세화오일장을 들렀다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해녀박물관이다. 세화오일장 인근인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 있는 해녀박물관은 제주해녀문화의 보존·전승을 위해 2006년 개관, 올해로 15년째 운영중이다.

해녀박물관 부지에 들어서면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이 서 있다. 제주해녀항일운동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박물관 내부 전시공간에는 실제 해녀들이 살았던 집도 기증을 받아 그대로 지었다. 음식문화와 양육, 반어반농, 영등굿 문화 등을 자세하게 전시해 놓고 있다.

제주해녀들의 삶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했다.

박물관 안팎의 전시물들은 모두 해녀들이 기부한 것이라고 하니 의미가 다르게 닿았다.

세화오일장과 차로 15분 남짓 제주시 방향으로 옮기면 김녕리가 나온다. 올레 20코스의 시작점이 있는 김녕리. 아름다운 해녀마을인 이곳에서는 29점의 금속공예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김녕금속공예벽화마을이다.

제주지역 문화예술단체인 '다시방프로젝트'는 2015년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김녕우체국~김녕서부두~김녕어울림센터~김녕용암해수사우나'까지 약 2㎞ 골목의 벽에 29점의 금속공예 작품을 설치했다.

미리 그려봤던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벽화거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금속으로 만들어낸 해녀의 일생을 보며 걷다보면 '우리 어머니'들의 삶에 잠시나마 녹아들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금속공예작품이 벽에 설치된 골목은 '고장 난 길'이라고도 불린다. '고장'은 '꽃'이라는 의미의 옛말(고어)이다, 또 '난'은 '피다'는 의미의 제주어다. '꽃(금속공예)이 핀 길'이다.

안내판이 따로 마련돼 있지도, 안내지도도 없어 29점의 작품을 모두 감상하고 돌아가겠다는 목표는 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금속공예 작품을 찾는 재미가 제법 크다.

다만 지역주민들의 삶의 공간인 만큼 과도한 촬영과 소음을 피해주는 것은 에티켓이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경제통상진흥원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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