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은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까. 전장에서 무장한 군인이 아기를 안은 모습은 어떨까.

아프간 전쟁에서 임무 수행 중인 한 미군 병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한 장이 지구촌에 깊은 감동의 여운을 던졌다. 전투 장면이 아니다. 아기를 안은 여군의 이미지다. 먼지가 묻은 누런 전투복 차림의 여군이 전투장갑을 낀 손으로 아기를 안고 있다. 소총과 장비가 그녀의 무릎 위에 놓여 있다. 아기의 눈엔 불안감이 서려있다. 아기를 안은 여군 병사의 모습이 여운을 남긴 이유는 이 사진을 남긴 얼마 후 전사했기 때문이다.

미 해병대 소속 니콜 지 병장(23)은 아프간 공항에서 난민탈출 작전에 투입되었다. 그녀는 밀려든 탈출자들로 아수라장을 이룬 현장에서 부모를 잃고 버려진 아기를 구해 보살폈다. 아기를 안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넣고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내 직업을 사랑합니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며칠 후 아프간 IS자살테러단이 난민탈출이 벌어지는 공항을 공격해서 200여 명이 사망했다. 미군 11명이 전사했고 니콜 지 병장도 전사자에 포함됐다.

전쟁은 죽음과 삶이 혼재하는 곳이다. 20년 아프간 전쟁은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AFP통신이 집계한 사망자 통계를 보면 미군 2448명을 포함해서 동맹군 사망자가 3592명이다. 한국군 희생자 1명도 나왔다. 미군 계약업체 직원 사망자가 약 3846명이다. 종군기자 72명이 사망했고 국제구호단체 직원 444명이 희생됐다. 물론 아프간 사람들의 희생이 더 컸다. 정부군·경찰 사망자가 6만6000여 명, 민간인 희생자가 4만7000여명, 탈레반 및 반군 전투원 사망자가 5만여명이다. 아프간 전쟁 희생자는 모두 17만명이 넘는다.

이들 전쟁 희생자 중에 니콜 지 병장의 이야기가 유독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종전을 며칠 앞두고 전사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보다는 난민탈출 현장에서 구해낸 아기를 안은 모습이 던지는 평화와 반전(反戰)의 메시지가 강렬하기 때문일 것이다.

8월 31일 미군의 완전철수로 아프간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과연 전쟁이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탈레반이 정권을 완벽히 장악할 때까지 내전의 위험을 안고 있고, 20년 전쟁으로 황폐된 3700만 명의 아프가니스탄은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다.

니콜 지 병장이 안았던 아기는 아프간 전쟁의 난민문제를 상징한다. 바로 전쟁의 가장 큰 후유증이 난민 문제다. 난민의 발생은 아프간 국내 문제지만 이들이 아프간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국제 문제다. 아프간 공항 탈출로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난민은 미국과 동맹군에 협조한 아프간 사람들로 그 수는 한정적이며, 또 돌봐줄 국가가 정해져 있는 난민들이다. 더 큰 문제는 탈레반정권의 보복을 두려워하거나 국가의 미래에 절망을 느낀 아프간인들의 탈출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아프간은 이슬람 국가다.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를 신봉하고 여권을 극도로 제한하며, 미국과 유럽을 증오하고 규탄한다. 그런데도 아프간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향하는 목적지는 체제와 종교가 확연히 다른 유럽이다. 자유와 물질적 편리함에 대한 동경일까.

유럽국가들은 아프간 난민 유입가능성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2015년 시리아 내전이 몰고온 수백 만 난민 물결로 홍역을 치룬 경험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난민수용에 유연했던 독일에서도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논쟁이 뜨겁다. 현재 아프간 난민문제로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는 나라는 터기와 그리스다. 바로 난민들의 경유국가이기 때문이다. 특히 터키에는 지난 봄 미군철수 발표 이후 국경철조망을 넘어 들어오는 아프간 난민이 일주일에 몇 만 명에 이르고 있다. 터키는 2015년 몰려온 시리아 난민 350만 명과 함께 아프간 난민 30만 명을 수용하는 문제로 국가적 부담과 고민이 크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던 한국도 난민문제가 발등의 불이 되었다. 이번 아프간 철수 사태로 한국도 아프간 난민 390여 명을 받아들였다. 주 아프간 주재 한국 대사관과 정부기관 등에서 일했던 직원 및 그 가족들로서 정부는 '특별기여자'라는 명칭을 붙였고 찬반논란이 있었지만 국민이 유연하게 수용한 셈이다.

우리는 이미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대거 유입 사태로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겪었다. 예멘난민과 아프간 난민은 유사점이 있다. 모두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들이고 이슬람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예멘 난민은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서 무작정 들어왔고, 아프간 난민은 한국을 위해 일한 사람들을 정부가 보호하기 위해 받아들인 경우다.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사람의 이동이 쉬워졌다. 한국은 GDP규모에서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올해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개도국 의식'에 남아있지만 한국을 보는 국제적 시선은 선진국이자 국제통상으로 부자가 된 무역국가로 자리매김되었다.

국제사회는 한국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돈도 내놓으라고 할 것이고 국제분쟁 해결에도 더 많이 참여하기를 요구할 것이다. 탄소도 더 빨리 더 많이 줄이라고 보챌 것이다. 또 있다. 난민해결에 몫을 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유엔 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전 세계 난민 수는 2018년 기준 약 2000만 명이 넘었다. 늘어나는 추세다.

지금까지 난민문제는 전쟁과 내전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향후 양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기후변화가 일으킬 환경난민이 상상을 초월할지 모른다. 한국은 탈북민 문제도 안고 있다. 이제 정부만 아니라 시민들도 난민문제를 먼 나라 먼 훗날 얘기로만 생각할 때가 아닌 것 같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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