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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가파도 시행착오'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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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예산 규모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지 정부 예산에서 65억 원이면 푼돈처럼 느껴지는 세상이다. 그러나 월급 500만원을 받는 사람 1600명이 일년 동안 꼬박꼬박 근로소득세를 내야 모을 수 있는 재정수입 액수다. 납세자의 눈으로 볼 때 얼마나 귀중한 돈인가.

9월 초 산업자원부가 예산 65억 원을 제주도의 작은 부속 섬 가파도에 쓰기로 결정했다. 산자부가 예산 1232억 원을 투입하여 소형도서재생에너지전환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했는데, 가파도가 선정되어 사업비 65억원을 배정받게 된 것이다. 제주도와 한국전력이 이 돈을 갖고 내년 말까지 가파도를 그럴듯한 '탄소없는 섬'(Carbon-free Island)으로 만들어 놓을 짐을 지게 되었다.

가파도는 제주도 본섬과 마라도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유인도다. 면적이 27만 평이고 상주 인구가 200명 내외다. 초등학교가 있지만 재학생은 21세기 들어 10명을 오락가락했다. 이런 작은 섬이 예산 65억을 따내서 정부의 그린뉴딜정책 일환으로 '탄소없는 섬' 프로젝트 사업을 하게 됐으니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가파도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망과 아쉬움이 크다.

가파도는 이미 10년 전 제주특별자치도에 의해 '탄소제로 섬'프로젝트가 시작된 곳이다. 시민사회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제주도가 중앙정부 및 한국전력의 협력을 받아 추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따라서 참여 기관들이 의지를 갖고 네트워크를 잘 구축해서 야무지게 진행했다면 지금쯤 가파도는 '탄소중립의 현장 교실'로 동양의 모범 사례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가파도의 10년실험은 성공했다고 자랑할 수가 없다. 너무 어이없는 시행착오가 컸다. 우선 재생에너지의 주력인 풍력발전기 2기가 작년부터 모두 고장난 채 멈춰섰고 섬이 필요한 전력 절반 이상을 경유발전기를 돌려 공급하고 있다. 또 날씨에 따라 변동폭이 심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해주는 지능형송배전망, 소위 마이크로그리드가 준비부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탄소없는 섬 가파도'가 잉태된 것은 2010년부터였다. 세계자연유산 등재와 올레 걷기 붐으로 제주도 관광객이 증가하고 마라도 방문객은 섬이 넘치도록 늘어나는데, 그 옆에 있는 가파도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외로운 섬으로 남았다. 제주도의 심각한 자연훼손을 걱정하던 뜻있는 민간인들이 가사모(가파도를 사랑하는 모임)를 만들었다. 이들은 그해 10월 가파도를 풍력과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어 쓰는 녹색섬 개념으로 생태관광지를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고, 덴마크의 보른홀름 섬의 현장 전문가를 초청해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했다.

이런 움직임이 정책입안자의 관심을 끌게 만든 결정적 계기는 2012년 9월 제주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였다. 정부나 제주도는 1만여 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에 뭔가 보여줄 상징이 필요했고, 2011년 '탄소없는 섬 가파도'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결정했다.

WCC가 열릴 때 가파도의 모습은 달라졌다. 섬에는 풍력발전기 2대가 돌았고, 30여가구 지붕에는 태양광패널이 설치됐다. 섬에서 운행되는 자동차는 전기차로 바뀌었고, 충전소가 생겼다. 무엇보다 섬의 경관을 망치던 전신주가 모두 사라졌다. 탄소없는 섬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시행착오가 나타났다. 풍력터빈 2대가 돌아갔지만 그 전기를 쓸 수가 없었다. 풍력터빈 관리는 남부발전의 소관이었고 송배전망은 한전의 소관이었는데, 사전에 송배전 문제를 조율하지 않았던 것이다. 풍력터빈의 불능상태는 1년 이상 방치되다가 고치긴 했으나 잦은 고장으로 전기생산이 빈약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간 풍력발전의 날개가 돌아간 시간은 603시간(25일)에 불과했다. 그후 한국전력이 관리를 맡았지만 실적은 시원치 않았다. 결국 작년 풍력터빈 작동이 완전히 멈췄다. 풍력이 잘 안 돌아간 이유는 터빈이 인도산인데다 생산중단된 기종이어서 부품교체가 어려웠다는 설명이 나왔다.

2008년 정부는 예산 수백억 원을 들여 제주도에 스마트그리드실증단지를 만들었다. 스마트그리드는 화력과 원자력같은 기존 송배전망에 재생에너지원이 생산한 전력이 달라붙을 때 전력계통이 원활하게 작동되도록 하는 지능형전력망을 말한다. 이렇게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만든 실증단지에서 얻었을 노하우가 왜 가파도의 마이크로시스템 구축에 적용되지 못했을까. 10년간 시행착오가 거듭된 '가파도' 프로젝트에 들어간 정부예산은 140억원이었다.

이제 제주도와 한국전력은 산자부의 예산 65억원을 다시 배정받아 '탄소없는 섬' 가파도 프로젝트를 계속하게 됐다. 실물적으로는 제대로 된 풍력발전기를 새로 세우는 일과 남아도는 풍력과 태양광 전기를 저장했다가 전기가 모자랄 때 공급해주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즉 대형 배터리를 설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시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정신과 자세다. 제주도관계 당국과 한국전력은 깊이 반성하고, 긴밀히 협력하여 꼭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산업자원부도 거대한 탄소중립정책을 실현하는 에너지전환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고 일의 진행을 챙겨야 한다.

가파도 주민들도 열린 자세로 '탄소없는 섬' 실현에 동참해야 한다. 에너지자립 섬을 만들려면 주민의 협력과 절제 정신이 중요하다. 그래야 가파도가 '탄소없는 섬'의 원조로서 긍지를 가질 수 있다.<뉴스1 고문>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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