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망울을 터뜨린 동백나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돌담으로 둘러싸인 3층짜리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폴개협동조합 드림캠프'다.
'드림캠프'라는 문구가 적힌 초록색 문패가 반기는 이 곳은 제주로 귀농·귀촌한 이들로 꾸려진 폴개협동조합이 지난 5년 간 합심해 일궈온 땀의 결정체다.
유기농법으로 직접 기른 농산물을 판매하고, 이 농산물을 활용한 가공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가 하면 다양한 교육 체험 프로그램까지 운영하며 해마다 2500여 명의 방문객과 만나고 있는 6차산업의 정석과도 같은 공간이 바로 이 곳이다.
강명실 폴개협동조합 대표(59)는 "꿈의 공간"이라고 옅게 미소지으며 말문을 뗐다.
끝끝내 교편을 내려놓을 즈음 두 딸까지 유학길에 오르자 강 대표는 2015년 5월 잠시 쉴 요량으로 남편과 함께 제주로 향했다. 그렇게 별다른 계획 없이 몇 달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 강 대표는 우연히 제주시의 한 은행에서 운명의 귀인을 만났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던 중 "일을 그만두고 놀고 있다"는 강 대표의 말에 "새파랗게 젊은 것이 놀고 있느냐"면서 호통친 이름 모를 할머니였다. 강 대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인생 2막을 제대로 준비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택한 제2의 직업은 '농부'였다. 정년이 없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당장 눈앞이 캄캄한 현실에 강 대표는 2016년 가족과 함께 '폴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감귤, 블루베리를 정성껏 길렀지만 초짜 귀농인의 상품은 시장에서 헐값에 팔리기 일쑤였다.
궁지에 몰린 강 대표는 오랜 교직경험을 바탕으로 농사일에 교육적인 요소를 더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교사 재직 당시 추진했던 각종 현장체험학습을 떠올려 보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강 대표는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 공부하며 빠듯하게 시간을 보냈다. 1년 간 한라산을 넘나들며 제주 곳곳에서 교육받은 시간만 1000시간이 넘을 정도다. 강 대표는 배우고, 토론하고, 현장에 적용하다 보니 점점 가야 할 방향이 보였다고 했다.
강 대표는 "제값을 못 받을 바에 차라리 아이들에게 실컷 먹여 보자는 생각으로 체험농장을 시작했는데 정말 반응이 좋았다"면서 "입소문이 나면서 직거래, 급식 납품 뿐 아니라 주스, 잼, 칩 등 가공제품도 가짓수가 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여름에는 블루베리 농장, 겨울에는 감귤 농장에서 수확·요리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최근 객실·산책로·바비큐장·강의실 등의 시설을 갖춰 문을 연 '드림캠프'에서는 여행·연수·워크숍·현장체험학습 등 다양한 목적의 단체 관광객들을 받는다.
이처럼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풍성한 체험농장을 운영할 수 있었던 건 강 대표를 비롯해 조합원 12명이 저마다의 자원과 노동력을 공유하며 폴개협동조합을 이끌어 온 덕분이다.
이는 눈에 띄는 성과와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폴개협동조합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유기농 인증·우수관리인증(GAP)·6차산업 인증사업자·식생활 우수체험공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스타팜에 선정된 데 이어 최근에는 제주관광공사의 '2021 제주 웰니스 관광지'로도 선정되는 기쁨을 안았다.
연도별 매출액 역시 2016년 2600만원, 2017년 6800만원, 2018년 1억3800만원, 2019년 2억1000만원, 올해 2억2000만원(추정)으로 10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그래도 강 대표는 "운이 좋았을 뿐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강 대표는 "처음엔 '폴개(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의 옛 지명)'라는 단어를 쓰는 것 조차 어려웠을 정도로 지역사회와 거리감이 있었는데 오랜 교류 끝에 이제는 만나면 반가운 사이가 됐다"면서 "폴개협동조합이 지역주민과 귀농·귀촌인들의 중간다리가 되고, 진정한 웰니스 커뮤니티로 나아간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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