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를 계기로 원자력이 다시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 절실해지면서 에너지 지형이 급속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후변화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탄소배출을 더 많이 더 빨리 줄여야 한다는 국제여론의 압박이 커지고 있고, 단기적으로는 지난 여름 이후 세계를 강타한 에너지 공급부족 사태가 원자력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왔다.

원자력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길이 가장 강렬한 곳은 유럽 국가들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COP26 기간 동안 "에너지 자립과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원자로 건설을 재개한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에 앞서 소형조립형원자로(SMR)개발에 약 3000여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미국 다음으로 원자로가 많은 국가로 필요 전력의 70%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점진적인 원자력 축소 정책을 추구해오다가 이번에 태도를 선회한 것이다.

COP26 주최국인 영국 정부도 회의 기간에 원전확대 비전을 제시했다. 비행기 엔진과 잠수함 원자로 기술분야에 뛰어난 롤스로이스가 추진하는 SMR 컨소시엄에 예산 3000여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6년 전부터 원자로 디자인 작업을 벌여온 롤스로이스는 2031년쯤 SMR 16기를 제작해 설치할 계획이다. 롤스로이스가 디자인하는 소형원자로는 여러 곳에서 생산한 부품을 트럭이나 선박으로 수송하여 조립하는 방식으로 크기가 축구장 2개 정도로 기존 대형원전의 10분의 1 수준이다. SMR 1기가 1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한다. 영국은 국내 전략생산을 넘어 SMR의 해외 수출을 겨냥하고 있다.

폴란드,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 등 동구권의 EU(유럽연합)국가들도 석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원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원자력을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지정해줄 것을 EU에 보채고 있다.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분류되어야 금융기관으로부터 원자력발전 건설의 융자를 받을 수 있다. OECD 국가들이 주축을 이룬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원자력을 지속가능한 에너지에 아직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유럽이 한통속은 아니다. 독일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원전을 선언하고 실천하는 국가다. 값비싼 전기료를 부담해가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골몰하고 있다. 덴마크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도 독일과 노선을 같이 하고 있다.

세계 3대 경제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의 원자력 정책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들 세 나라 탄소배출량을 합치면 전 세계 50%가 넘는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국제사회의 넷제로 비전을 선도하면서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을 화석연료의 대체에너지로 보고 있다. 약 60억 달러를 투자하고 세금혜택을 통해 기존 원자력발전소를 보강하고 새 원자로를 짓겠다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부는 소형원자로 가동을 승인했다. 빌 게이츠가 투자한 원자력회사 테라파워는 아이다호 폐광 지대애 SMR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은 향후 15년 동안 150개의 원자로를 건설할 계획을 밝혔다. 한 해 10개씩 원전을 짓겠다는 어마어마한 계획이다. 2030년이 되면 중국은 세계 최대 원자력발전 국가가 될 것이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원자로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사고 후 50여개에 이르는 원자로 가동을 중단했던 일본은 국제사회의 원자력 부활 분위기를 타고 원자력 복귀를 노리고 있다. 그밖에 인도네시아, 브라질, 가나 등 원전 건설을 원하는 개발도상국들이 줄을 서고 있다.

깨끗한 에너지원은 우리 시대의 절실한 요구다. 원자력은 원래 깨끗한 에너지가 아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경험했듯이 원자로 폭발에 의한 치명적인 방사능 누출 위험이 있다. 또 핵폐기물은 수만 년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핵물질 및 무기 확산이라는 국제안보 문제 또한 크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원자력을 값싼 에너지로 치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깨끗한 에너지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기후변화 시대에 '깨끗한 에너지'의 제1조건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야 한다. 원자력은 탄소배출이 재생에너지보다도 적다고 한다.

지금까지 논의되는 기후변화의 과학을 종합해 볼 때 이대로 탄소를 배출하면 기후변화가 초래할 재앙은 한 개인이나 국가가 아니라 제6의 멸종, 즉 인류문명의 파멸을 부르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탄소중립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이다. 원자력이 잘못됐을 때 입을 위험보다 기후변화가 초래할 위험이 훨씬 크며, 원자력의 위험성은 기술발전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원자력 선택의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SMR은 기존 대형원자로의 문제점을 보완해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영국 한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 기존 원자력 국가들이 연구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5년간 탈원전 분위기에 가려졌지만 한국의 SMR 기술개발도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국제원자력기구에 의해 평가되고 있다.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또 지난 COP26 정상회의에서는 탄소배출을 2018년 기준으로 40%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탄소중립위원회가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을 건드리지 못한 채 2050년 원자력 비중을 7%로 줄이는 것을 상정하고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한국의 전력생산에서 석탄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을 합한 비중은 90% 이상이다. 여기서 2030년까지 탄소배출 40% 감축하고 2050년 제로(0)를 달성할 수 있을까. 누가 내년 5월 대통령으로 취임하든 차기 정부는 원자력의 합리적 역할을 재정립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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