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눈보라가 세차게 휘날리던 날, 제주시 중심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남서쪽 끝 모슬포까지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안엔 승객이 예닐곱명 타고 있었는데 대부분 나이든 사람들이었습니다.

약속 시간이 조바심나서 운전대에 앉아 있는 남성 운전기사에게 물었습니다.

"이 차 언제 출발합니까?"

기사는 본척만척하면서 짜증스럽다는 어투로 대답했습니다.

"나가면 시간표 붙어 있어요. 그거 보고 타세요."

면박을 주는 듯한 기사의 태도에 주눅이 들어 그냥 자리에 앉았습니다. 4, 5 분 후 차가 출발했습니다. 노선에 익숙한 지역 사람들은 고분고분 버스에 타고 기다리는데 귀찮게 출발 시간을 묻는 승객이 나타나니 무의식적으로 반발심을 보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불쾌했습니다. "5분후 출발합니다"라는 한마디쯤은 버스기사로서 서비스할 수 있는 일인데, 마치 승객의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식으로 대하니 말입니다.

만약 그 운전기사가 그날 특별히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한 번 그랬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불친절이 버릇이 되어 이렇게 승객을 무례하게 대하는 버스 기사가 많다면 이건 '제주도 대중교통의 큰 문제'입니다.

다른 지방도 비슷하겠지만 제주도에서 노선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가용을 이용하기 힘든 노약자 주민이거나 제주도 현지 사정에 익숙하지 않은 외지 관광객들일 것입니다. 거의 모두 교통 약자들입니다. 이들은 차를 타고 내리면서 운전기사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툭하면 기사가 주는 면박을 받아야 할터이니 승객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클 것입니다. 버스 기사의 불친절은 주민의 행복을 위해서나 관광객의 편리한 여행을 위해서도 개선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제주도의 노선버스 기사들이 승객에게 친절해야 할 큰 이유가 또 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017년부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버스준공영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서 그동안 버스업자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꽉 막혔던 노선의 조정 등 주민과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버스운행 체제를 개편했습니다. 이 제도개선의 목표 중 하나가 운전기사로 하여금 안전운전과 친절을 이끌어내려는 것입니다.

버스준공영제는 승객이 뜸한 곳도 버스가 자주 다니도록 배차간격도 조정했습니다. 당연히 버스 증차가 필요했고 따라서 운전기사도 1410명으로 대폭 늘려야 했습니다. 제주도가 버스회사 등 전문가의 의견을 취합하여 운전기사 연봉을 4200만 원으로 정하고 600명의 기사를 추가 모집했습니다. 제주도 인력만으론 부족해서 전국에서 지원자가 몰려들어 약 250명의 도외 기사가 취업할 정도였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기사 연봉을 포함한 버스운행 원가를 계산하여 일정한 수익을 버스 회사에 보장해주고 있습니다. 매년 7개 버스회사에 주는 보조금이 약 1000억원입니다. 2020년 버스회사에 지원된 보조금은 938억 원이었습니다.

제주도의 재정규모로 볼 때 매우 큰 돈입니다. 그래서 버스준공영제는 많은 주민들의 비판적 시각 속에 출범했습니다. 노선과 시간에 따라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대여섯명만 태우고 다니는 버스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주도는 단기적으로 경제적 효율성만 생각할 수 없는 특수한 교통여건이 있습니다.

제주도는 인구비례로 승용차 대수가 전국 최상위권에 속합니다. 승용차의 수송분담율이 54.4%로 매우 높습니다. 이에 반해 버스의 수송분담율을 보면 도민들의 경우 14.7%, 관광객의 경우 이보다 조금 높은 15.5%로 매우 낮은 편입니다. 때문에 제주도의 교통상황은 승용차가 많아 서울 못지 않게 정체가 심하고, 버스 교통은 열악합니다.

지하철이 없는 제주도는 대중교통 수단으로서 버스가 활성화돼야 합니다.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은 작년 1200만 명을 넘겼습니다. 중국인 300만 명이 들어오던 2015년 전후와 비교해서 내국인 관광객 방문이 더 많아졌습니다. 활동량이 많은 관광객 수송을 승용차에만 의존한다면 교통체증 문제와 오염배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버스가 활성화되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탄소를 줄이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다중이 이용하는 버스를 확충하고 승용차 이용을 줄이는 것은 탄소를 줄이는 길입니다. 이것이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를 구하는 길이고, 교통체증과 오염을 줄이니 제주도를 위하는 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도 버스준공영제는 잘만 운영되면 긍정적인 정책이라고 봅니다.

제주도 버스기사 1400여 명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들이 안전하게 운전하고 승객에게 친절할 때 시민들은 1000억원의 국민세금을 버스회사에 보조한 것이 잘한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호소를 버스회사 사장이 새겨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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