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세계의 보물섬, 국제자유도시, 세계자연유산…. 당신은 제주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제주는 전 국민의 이상향이지만 때로는 낯설게 다가온다. 제주는 지리적 특성상 타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풍습과 문화, 제도, 자연환경 등을 지녔다.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와 관련한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보고 소개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제주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는 독자라면 제보도 받는다.

'삼다도'(三多島). '바람, 여자, 돌' 이 세가지가 많은 섬이라는 뜻으로 '제주'를 이르는 말이다.

'삼다도'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주에는 한라산부터 해안에 이르기까지 지천으로 돌이 널려 있다.

제주가 아닌 지역에서도 '돌'이 있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제주처럼 돌이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 지역은 찾아보기 힘들다.

제주에서의 돌은 쓰임새가 다양했다.

밭을 따라 길게 늘어지게 쌓아 돌담(밭담)은 땅의 경계가 됐다. 또 집 마당에서 길까지 연결된올레에 쌓은 돌담은 바람으로부터 보금자리를 지켜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무덤 주변에 울타리로 쌓아 올린 돌담(산담)은 삶과 죽음의 경계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다.

돌은 또한 외부의 침입을 막아주기도 했다.

제주 해안가를 빙 둘러싼 돌무더기인 '환해장성'(環海長城)이 바로 그 것이다.

'섬'인 제주는 바다가 통로였다. 보금자리를 빼앗고 수탈해가는 외부인들은 언제나 바다를 건너서 왔다.

그래서 제주인들은 바다를 빙 둘러가며 돌담을 쌓았다.

환해장성은 대부분 제주 바닷가에 흔한 현무암으로 만들어졌다. 주변에 널린 현무암을 엇갈려가며 만든 허튼층 쌓기 방식이다. 굴곡진 지표면을 잔돌로 메우고 난 뒤 기단석을 놓고 그 위에 담을 쌓아올렸다.

바닷가는 비탈 지형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해안에 성을 쌓으면 성안이 자연스럽게 성밖보다 높아진다. 방어에 유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해장성'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은 '탐라지'에서 "연해 환축(環築)하여 둘레가 300여리에 이른다. 고려 원종 때 삼별초가 진도에서 반란을 일으켜 왕은 시랑(侍郞) 고여림 등을 탐라에 파견해 병사 1000명으로 이를 대비하기 위해 장성을 구축했다"고 기록했다.

삼별초의 제주 진입을 막기 위한 성벽이라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김상헌이 제주에 왔을때 기록한 '남사록'(南槎錄·1601년)에서는 환해장성이 "바닷가 일대는 돌로 성을 쌓았는데, 연달아 이어지며 끊어지지 않는다. 섬을 돌아가며 곳곳이 다 그러하다. 이것은 탐라 때 쌓은 만리장성이라고 한다"고 묘사된다.

당시만 해도 제주 해안가 곳곳이 환해장성으로 둘러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김상헌은 환해장성이 고려시대보다 훨씬 앞선 '탐라'(耽羅)때 것이라고 했다.

1449년(세종 31년)에 편찬하기 시작해 1951년(문종 1년) 완성된 '고려사'에 의하면 '탐라국'(耽羅國)명칭은 삼국통일 이후인 문무왕 때부터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독립된 형태를 유지하다 1105년 고려 숙종 시기에 속국 지위가 박탈됐고, 중앙정부의 통제권에 들어왔다.

제주의 환해장성은 어느 한 시기에 축조된 것이라 볼 수 없다.

고려시대에는 삼별초의 제주진입을 막기 위해서라면, 삼별초 역시 고려 정부군과 몽골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을 터.

또 조선시대에는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해 바닷가를 따라가며 성을 쌓고 보수하는 작업을 계속했다고 전해진다. 무너지면 쌓고, 또다시 무너지면 쌓아올리는 일이 수대에 걸쳐 이어졌다.

1918년 역사학자 김석인 선생이 편찬한 '탐라기년'(眈羅紀年)에는 "헌종 11년(1854) 영국 선박이 1개월동안 우도 연안의 수심을 측정하자 권직 목사가 크게 놀라 그해 겨울 도민을 총동원해 환해장성을 쌓았다"고 기술했다.

제주 해안을 둘러싼 환해장성이 얼마나 길었는지 정확한 실태는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에는 "제주 바닷가를 따라 둘러 쌓았는데, 둘레가 300여리다"고 적혀있다.

1리는 약 400m. 제주 바닷가의 환해장성의 길이는 120㎞에 달했다고 추산할 수 있다. 제주의 해안선은 약 253㎞다.

제주 해안가 절반을 차지했던 환해장성. 하지만 그간 무관심과 개발광풍으로 지금은 제주시 화북, 애월, 행원, 한동 등 28곳에서만 흔적으로 남아았다.

이 곳을 전부 모아봐야 8.5㎞. 그나마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등 10곳 5.1㎞만 1998년 제주도기념물로 지정됐다.

제주도는 환해장성 복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엉터리'라는 지적이 많다.

환해장성은 해안에 축조된 만큼 근처 바다에 있는 둥글둥글한 돌, 또는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을 활용했다. 하지만 복원된 환해장성은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네모반듯한 돌로 육지의 성벽을 쌓듯이 축조해 원형과 다른 모습이 됐다는 것이다.

제주도 역시 이런 지적에 공감, 올해 '제주도 환해장성의 역사성 고증 연구' 용역과 '원형이 보존된 환해장성 샘플 표본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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