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대표적인 장기미제사건인 '제주 변호사 살인사건'과 관련해 살인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이 무죄를 선고받자 피해자 측이 "통탄스럽다"며 검찰에 즉각적인 항소를 촉구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17일 오후 살인, 협박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김모씨(56)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김씨가 본인의 자백 취지의 인터뷰를 방영한 한 방송사 PD를 협박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고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제주의 한 폭력범죄단체 '유탁파'의 행동대장급 인사였던 김씨는 1999년 8~9월 사이 누군가로부터 현금 3000만원과 함께 '골치 아픈 일이 있어 이모씨(당시 44세·검사 출신 변호사)를 손 좀 봐 달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후 김씨는 2~3개월 간 동갑내기 조직원인 손모씨(2014년 사망)와 함께 범행을 공모했고, 끝내 손씨는 그 해 11월5일 새벽 제주시의 한 도로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B씨의 복부와 가슴을 세 차례 찔러 B씨를 살해했다.

당초 경찰은 김씨에게 살인교사 혐의를 적용했으나, 검찰은 김씨의 역할, 재수사의 단초가 됐던 김씨의 자백 취지의 방송 인터뷰, 범행 현장과 흉기 모양 등에 대한 김씨의 구체적인 진술 등에 비춰 살인죄의 공모공동점범이 성립된다고 봤다.

그러나 김씨는 재판 과정에서 "범행에 가담한 적이 없다"면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자백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리플리증후군(허구를 믿고 거짓말 등을 하는 성격장애)에 의해 허황되게 진술한 것"이라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었다.

재판부는 심리 끝에 검찰의 공소사실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시한 증거는 상당 부분 가능성에 대한 추론에 의존한 것"이라며 "주범(손씨)의 범행 경위 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공소사실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씨에게 "법률적 판단에 따른 무죄로 더 이상 설명은 하지 않겠다"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어 김씨의 협박 혐의에 대해서는 "피고인은 경찰로부터 재수사를 받게 되자 자신의 인터뷰를 방영한 피해자에게 보복을 암시하는 문자 메시지들을 발송했다"며 "이는 보복협박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점, 현재 피해자의 불안감이 큰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실형 선고 배경을 밝혔다.

과거 피해자 이씨의 변호사 사무소 사무장이었던 고경송씨(57)는 선고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피고인은 악을 저질렀고, 벌을 받아야 함이 마땅한데 법률적 판단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아 너무 통한스럽다"면서 검찰에 항소를 촉구했다.

검찰 역시 항소를 예고했다. 검찰 관계자는 "1심 판결문 전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항소심을 통해 범죄사실을 충분히 입증하겠다"며 "범죄에 상응하는 형사처벌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김씨는 2020년 6월27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자백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재수사에 나선 경찰에 의해 2021년 6월23일 캄보디아 현지에서 국내로 강제송환됐다.

A씨는 수사기관에서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인터뷰에 응했다"며 "인터뷰를 통해 피해자의 사망 경위 등을 밝히면 유족으로부터 귀국 경비 등 사례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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