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법에 교육당국은 소극 대처·떠넘기기 일관
피해 학부모들 모임, 언론 제보 등 외로운 싸움

[편집자 주] 서울 소재 한 교육업체가 영어캠프 허위광고와 부실운영으로 전국에서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유죄가 확정됐는데도 수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뉴스1 제주는 두 차례에 걸쳐 ‘제주국제영어마을 영어캠프’의 실태와 문제점, 해결 방안을 짚어본다.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으로 왔는데 불법이라고 의심할 리가 있겠어요?”

지난달 제주국제영어마을 영어캠프를 신청했던 충북의 학부모 A씨가 처음 영어캠프를 알게 된 건 학교에서 보내온 유인물을 통해서였다.

접수 마감 날까지 일단 참가비를 송금해야 한다는 업체 측의 설명에 구체적인 캠프 일정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90여 만원을 입금했던 게 잘못이었다.

캠프 측에서는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얘기했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A씨는 “꺼림칙한 기분에 입금한 지 사흘 뒤 참가비 환불을 요구했지만 업체 측은 약관상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학교에 항의하니 업체 대표가 와서 홍보를 부탁해 신청서를 배포한 것일 뿐 학교에서 직접 발행한 안내문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하더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우여곡절 끝에 환불을 약속받았지만 약속한 기일(7월28일)이 되도 깜깜 무소식인데다 전화 통화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A씨는 “교육청이나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싶어도 학교 입장이 곤란해지면 자녀에게 피해가 갈 것이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2006년부터 11년째 운영되고 있는 제주국제영어마을 참가자 일부는 이처럼 학교에서 나눠준 유인물을 통해 아무 의심 없이 캠프를 신청하게 됐다.

하지만 부실운영이나 파행 등으로 인해 피해를 당해도 대부분의 학교는 ‘나 몰라라 태도’로 일관했다.

해마다 수십 건의 피해사례가 접수되자 제주시교육지원청은 2011년부터 6차례에 걸쳐 무등록 학원(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운영 업체를 경찰에 고발했다.

그 결과 1차는 벌금 150만원, 2차는 벌금 400만원, 3차·4차 벌금 1300만원이 선고됐고, 나머지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잇단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영어캠프는 계속됐다.

제주시교육지원청 담당자는 “캠프가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사전에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며 “일단 캠프가 열리고 난 다음에 곧바로 고발조치를 하지만 처벌이 약하니 계속 캠프를 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원법에 따르면 관할 교육청에 등록·신고 없이 학원·교습소를 설립·운영한 경우 폐쇄나 교습 중지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으며(19조), 등록 없이 학원을 설립·운영한 자에게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분이 내려진다(22조).

운영 업체 대표는 학원법 위반과 사기 혐의로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또 다시 올 여름 캠프 참가자를 모집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마땅한 법적 조치가 없자 제주시교육지원청은 전국 시·도교육청에 ‘방학 중 영어캠프 운영에 따른 학부모 피해주의 안내’라는 제목으로 협조문을 보냈다. 하지만 이마저도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주시교육지원청이 피해주의 안내문을 발송할 때마다 업체 측은 영업방해를 했다며 2012년 9000만원, 2013년 3400만원, 2014년 3000만원, 2015년 8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하기도 했다.

1차는 화해 권고로, 2차는 원고 패소로 판결이 났지만 2014~2015년 소송 건은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제주시교육지원청 담당자는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며 막무가내식 소송전에 혀를 내둘렀다.
 

수년째 전국적 피해가 되풀이되는데도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이유는 이른바 떠넘기기식 행정 때문이다.

참가자 모집이 전국적으로 이뤄지다보니 제주시교육지원청은 지난해 7월 “교육부에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해야 한다”고 제주도교육청에 의견을 전달했고, 도교육청 역시 이에 공감했다.

도교육청 담당자는 “수차례 전국 시·도교육청에 주의 촉구 안내문을 보내도 효과가 없으니 교육부에서 나서서 공문을 배포해주면 안되겠느냐고 전화로 건의했다”며 “하지만 윗사람과 논의를 해보겠다면서 흔쾌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고 토로했다.

당시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사례와 불법운영실태 등을 정리해 교육부에 메일로 발송하기도 했다고 도교육청 담당자는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담당자는 “영어캠프 피해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 작년 메일이라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며 “시·도에서 일어나는 일은 저희(교육부)한테는 권한이 없다보니 교육부에서 나서달라는 요청을 하려면 공문으로 발송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시초문이라는 교육부의 입장에 도교육청 담당자는 난색을 표하며 “일단 공문을 보내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싸인이라도 있었더라면 공문을 보냈을 것”이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도교육청과 교육부가 이처럼 떠넘기기식 행정을 펼치고 있는 사이 피해자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교육당국이 영어캠프 피해자를 양산시킨 또 다른 주범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그동안 전국의 피해 학부모들은 교육당국의 소극적인 대응과 느슨한 법적 테두리 속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피해자 모임 카페를 만들고 언론에 제보하는 등 외로운 싸움을 이어왔다.
 

부산의 피해 학부모 B씨는 “자식 교육이라면 어려운 형편에도 기꺼이 돈을 쓰는 부모들의 심리와 법적 허술함을 이용해 사기를 친 것”이라며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따지다가 지쳐서 잃어버린 셈 치다보니 10년 넘게 이어져온 것 같다”고 지적했다.

B씨는 이어 “언론에도 여러 번 보도됐는데 참가자들을 또 모집하도록 놔둔 교육당국이나 우리나라 법이 참 답답하다”면서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 계속해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피해 학부모 C씨는 “서울에 있는 회사가 대놓고 제주라는 이름을 내걸고 수년째 피해 학생들을 양산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제주도교육청이 이해가 안 된다”며 “교육부나 지역교육청이 몸을 사리지 말고 아이들의 일에 팔벗고 나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5일 현재 제주국제영어마을 홈페이지는 서비스 기간 만료로 폐지된 상태며, 지난달 25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여름캠프는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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