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속에 들어가면 쓰레기를 만납니다. 세 사람이 제주 바닷가 한 자리에서 1시간 동안 주운 페트병이 40리터 짜리 마대로 20개가 넘었습니다. 페트병 600개쯤 됩니다. 나이든 해녀분들이 물질만 나가면 보았다는 물고기 떼나 해초 숲은 제주 바다에서 볼 수 없습니다."

다이버이자 바다 쓰레기줍기 운동을 하는 변수빈씨(32·여)가 방송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하루 3만 명씩 제주에 도착하는 관광객들은 맑은 바다를 보고 청정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이 말에 동의할까. 글쎄다. 유명 관광지에는 쓰레기가 안 보일 것이다. 행정관청이 나서서 청소를 독려할테니까.

그러나 제주도는 '쓰레기섬'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바다 물로 흘러든 플라스틱 쓰레기는 그대로 쌓인다. 통계에 의하면 2020년 제주 바다에서 건져올린 쓰레기는 1만6000 톤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이 상황을 모두 한탄하고 비판한다. 시청이 잘 치워주기를 바라거나 보챌 뿐 행동에 나서지 못한다. 기존의 환경운동가들도 감시하고 비판하는데 그친다. 직접 나서서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변 씨는 자발적으로 제주 바다를 청소하는 청년 모임 '디프다 제주'를 만들어 직접 바다 물속으로 들어가 쓰레기를 줍는다. 2018년 다양한 직업을 가진 회원들을 모아 바닷속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디프다 회원들은 이 쓰레기줍기 운동을 '봉그깅'이라고 부른다. 나이든 제주인들은 '봉그다'란 말을 지금도 쓴다. '찾아 줍다'는 제주어다. 2016년 스웨덴에서 청년들이 쓰레기를 주으며 조깅하는 환경운동을 펼쳤는데 이를 플로깅(Plogging)이라 불렀다. 스웨덴어 'Plock upp'(줍다)과 'Jogging'(조깅)을 합성한 말이다. 이 운동이 2018년 한국에도 들어왔고,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심각한 제주도에서 청년들에 전파되었다. 디프다 회원들은 제주어 '봉그다'와 '플로깅'을 합성하여 봉그깅이라고 이름지었다. 바닷물 속에서 헤엄치거나 해변을 거닐면서 플라스틱 폐기물을 봉근다는 개념이다.

변수빈씨는 원래 부산 출신이다. 10여년 전 가족이 제주로 이주하게 되자 따라와서 제주여자가 됐다. 최소장비로 물속에 들어가는 프리다이버로 바다를 즐기는 모임에 참여하다가 바다속에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의 심각성을 체험했다.

그의 친구가 물속에서 다이빙할 때 끼는 플라스틱 소재 마스크를 잃어버렸다. 며칠 후 물속에서 그걸 찾았다. 마스크에 물고기 이빨 자국이 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마스크에 보말이 붙어있는 것도 발견했다. 물고기와 조개가 플라스틱을 먹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물고기와 보말을 사람이 먹으면 사람 몸속에 플라스틱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달라졌다. 동호인들과 함께 '디프다제주'란 환경 단체를 만들었다. 스포츠활동을 하다 제주 바다 자원 청소원이 된 셈이다.

지구를 반바퀴 돌아 아프리카 세나갈의 수도 다카르에서는 매년 11월에 국제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이 마라톤에는 48세의 모도우 폴이 해마다 꼭 참석한다. 스타트 라인에는 선수들이 다리펴기 운동을 하는 등 질주를 위한 준비운동이 한창인데, 폴은 온몸에 플라스틱 백을 꿰어 만든 망토를 걸치고 플라스틱 안경을 쓰고 세네갈 깃발을 흔들며 마이크를 입에 대고 "노 플라스틱"을 외친다.

그는 선수가 아니라 마라톤 이벤트를 이용하여 플라스틱 반대운동을 벌이러 나온 환경운동가다. 선수들이 출발한 뒤 스타트 라인에는 버려진 플라스틱 생수병이 즐비하다. 폴과 10여명의 자원봉사 동료들은 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고 또 코스를 따라가며 청소를 한다. 그는 플라스틱 백으로 디자인한 옷을 입고 다카르 거리에서 자주 춤을 추며 플라스틱 반대 이벤트를 벌인다. 이런 일로 그는 '플라스틱맨'이란 별명을 얻었다.

폴의 플라스틱 쓰레기 반대 운동은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98년 군복무를 하면서 주둔지 농촌의 소들이 플라스틱 백 부스러기를 먹고 비실비실 앓아 죽는 것을 수없이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제대 후 티셔츠 가게를 열었다. 그런데 시장 바닥이 버려진 플라스틱 백이 쌓이는 것을 보고 이웃들에게 치우자고 제의했으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는 혼자 13일에 걸쳐 시장안 플라스틱 쓰레기를 다 치웠다. 그러나 쓰레기는 곧 쌓였다. 혼자만 해서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0년 폴은 평생 번 돈 500달러를 들여 '세네갈을 청소하자'는 단체를 만들어 플라스틱 퇴치 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도시 거리에 나무심기 운동을 벌이며 주민을 설득하기 위해 동네 모임을 주선했다. 수집한 플라스틱으로 공원의자를 만들고 도로포장용 블록을 만들었다. 고독한 그의 플라스틱 퇴치운동은 지지자를 얻기 시작했다. 도시의 행상들이 참여했다. 마라톤 경주에 나온 선수들도 폴 옆을 달려갈 때는 "노 플라스틱 쓰레기"(No Plastic Waste) 라고 격려의 구호를 외친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잃고 혼자가 된 어머니를 따라 도시로 나온 폴은 학교는 6년밖에 못 다니고 중퇴한 후 철공소 또는 식당에서 일하며 가족을 돕다가 어머니마저 죽자 군대에 입대한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이제 '플라스틱 맨'으로 사회에 희망을 주는 멋있는 아프리카인이 되었다.

세네갈은 플라스틱 쓰레기로 세계에서 해양 오염을 많이 일으키는 10개국 중 하나다. 인구 1700만 명의 세네갈은 인구가 해안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부터 특정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했으나 속수무책이다. 이대로 가면 2025년에 관리되지 않은 플라스틱 쓰레기 약 70만톤 가량 해안을 뒤덮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난한 나라 세네갈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심각한 오염원이지만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 사업에 매달려 먹고 사는 사람도 많다. 세네갈 최대의 쓰레기 집하장 엠베베슈에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2000여명이나 된다. 이들은 플라스틱 중개인에게 수집한 플라스틱을 ㎏당 13센트(20원)에 팔아 일주일에 25~35달러(3만~4만2000원)를 벌어 가족을 먹여살린다. 이곳엔 수집가와 중개인뿐 아니라 가구제조업자 패션디자이너 등 플라스틱을 소재로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쓰레기산업 생태계를 이룬다.

그런데 세네갈 정부가 오염원 정비 차원에서 2023년부터 대규모 쓰레기 처리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계획을 세우자 플라스틱 폐기물 수집으로 살아온 수만명이 생계 걱정으로 한숨을 쉰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이를 보면 한국과 세네갈의 플라스틱 문제는 닮으면서도 다른 측면이 있다.

플라스틱은 1907년 처음 발명되었고, 석유화학산업이 발달에 의해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고 포장재, 건축자재, 섬유로 대량 소비되면서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다. 사용은 편리하기 이를데 없지만 그 결과 플라스틱 쓰레기가 땅, 산, 호수, 바다는 물론 북극과 남극까지 오염하기에 이르렀다. 플라스틱 소비 사용량을 보면 그 나라의 플라스틱 오염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은 1인당 연간 88㎏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해서 미국(105㎏) 영국(98㎏) 등과 함께 플라스틱 폐출 최상위권에 들어가 있다.

제주의 '봉그깅' 멤버들이나 세네갈의 '플라스틱맨'이 줍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정말 보잘 것 없이 적은 분량이다. 그러나 이들의 캠페인 정신이 널리 퍼져서 플라스틱 줍기는 물론, 덜 쓰기 운동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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