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째 비 안와 발아 깜깜무소식…재파종 농가 속출

“한 달 넘게 비가 안 오니 별 수 있나요. 다 갈아엎었죠.”

17일 오후 제주시 구좌읍 당근 밭 3000평을 갈아엎고 재(再)파종을 마친 김권도씨(48·제주)는 메마른 땅과 하늘을 번갈아 쳐다보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제주지역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다 비까지 오지 않으면서 당근 주산지인 제주시 구좌읍 농민들은 그야말로 비상에 걸렸다고 김씨는 말했다.

지난 2일 1차 파종을 했다는 김씨는 “당근은 파종기를 지나 한창 발아해야 할 시기인데 15일이 지나도록 발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며 “두고만 봐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재파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7월 말이나 8월 초 일찍 파종을 한 농가들은 재파종을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며 “그나마 트랙터가 있는 사람들은 직접 파종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인부를 고용해야 하니까 종자값에 인건비까지 돈이 더 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6일부터는 비소식이 있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는데 그때마저도 안 오면 답이 없다”며 “사람이 물을 주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비밖에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당근 밭에서 스프링클러를 이용해 가뭄과 싸우고 있던 김홍만씨(68)도 재파종을 고민하고 있었다.

지난달 28일 서둘러 파종을 마친 김씨는 “물때만 맞으면 파종 후 10일에서 12일 후 발아하는데 20일이 지나도록 싹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재파종을 하기 전 마지막 몸부림으로 물을 줘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이어 “재파종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당근은 이미 파종시기가 늦었기 때문에 큰일”이라며 “감자를 파종하자니 종자가 없고 월동무로 대체하자니 과잉생산으로 연쇄 피해가 발생하진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늘만 쳐다보던 김씨는 “오늘 비가 온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대지 표면만 적시고는 금방 그쳐버려 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며 “어떻게 해야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뱉었다.

5일 전부터 스프링클러를 이용해 물을 댄 고광덕씨(46)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다.

지난달 27일 1800평가량 농지에 당근을 파종한 고씨는 “우리는 이제 막 발아하는 시기여서 그나마 좀 나은 편”이라면서 “수분을 충분히 머금어야 하는데 앞으로도 한동안 비소식이 없다고 해서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밭에 계속 나와서 물을 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좌읍에서 강수량 부족으로 가뭄 피해가 심각해짐에 따라 소방물탱크차량을 이용한 물백(water bag)을 설치해 급수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고씨는 말했다.

고씨는 “당근 파종기·생육기가 여름철이라서 해마다 구좌지역에 가뭄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데 동부지역은 농업용수 관로 설치도 여전히 안 되고 있다”며 “농업용수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농업용수 광역화 사업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아는데 하루빨리 이뤄지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제주도 관계자는 “2014년부터 진행된 동부권역 농업용수 광역화 사업 추진이 계획대로 이뤄지고 있어 올해 말이면 마무리될 것”이라며 “내년부터는 가뭄에도 농업용수 걱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장 올해 피해를 앞둔 상황에 제주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8월 중순까지 발아를 못한 당근 밭은 적어도 20일까지는 갈아엎어서 재 파종을 해야 한다”며 “그 전에 비가 오면 좋겠지만 아닌 경우에는 월동무 등 대체 작물을 심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구좌읍사무소에 따르면 구좌읍지역 당근 밭은 1340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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