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뉴스1) 오미란 기자 = "여기서 마농(마늘의 제주어) 키운 게 40년인데, 이런 일은…."

제11호 태풍 힌남노(HINNAMNOR)가 제주를 할퀴고 간 6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고향땅인 이곳에서 40년간 마늘을 재배해 온 A씨(69)는 절반 이상이 흙탕물에 잠겨 버린 자신의 마늘밭을 보고 돌담 위로 두 손을 짚으며 그대로 망연자실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늘 줄기 끝에 붙어있는 싹(주아)를 따서 씨마늘로 활용하는 주아 재배 방법으로 조심스레 파종한 지 불과 11일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A씨는 침수 피해를 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비가 많이 오더라도 빗물이 금세 빠지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며 "아무래도 요 며칠 계속 비가 많이 오고 태풍이 지나가면서 폭우까지 뿌려 이렇게 된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실제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제주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난 4일부터 이날 오전 9시까지 사계리가 있는 제주도 서부에는 고산지점 266.3㎜, 대정지점 278.0㎜, 가파도지점 250.0㎜ 등 200~300㎜의 많은 비가 쏟아졌다.

특히 사계리가 있는 안덕화순지점에서는 시간당 41.5㎜의 비가 쏟아지기도 했다.

A씨는 "그렇다고 파종을 다시 할 수도 없다"고도 했다. 재파종하는 데 드는 노동력과 인건비 등이 만만치 않아서다. 또 재파종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파종 시기가 늦어 작황이 부진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물에 잠기지 않은 땅에서라도 마늘이 좀 자라 주길 바라는 것밖에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이런 일은 뉴스에서만 봤는데… 추석 코앞에 두고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연신 허탈해 했다.

 

 


뒤이어 찾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영락리의 한 광어 양식장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바닥을 빼곡히 메운 광어들이 보여야 했지만 이 양식장의 수조들은 광어는 온데간데없이 모조리 흙탕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B씨(40)는 광어의 행방을 묻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믿기 힘들겠지만 흙탕물 아래 모두 깔려 있다"고 했다. 실제 한 양식장 직원이 수조 안으로 들어가자 가라앉아 있던 토사가 순간 피어오르면서 하얀 배를 드러낸 죽은 광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B씨는 "지금 광어들이 4일째 밥을 못 먹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3~4일 뒤에는 여기에 있는 광어의 30~40%가 폐사할 것 같다"고도 했다.

이는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양식장들의 경우 구조상 지하수 취수가 어려워 바닷물을 취수원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태풍이 불면 종종 이 같은 피해가 발생한다고 하지만 2년차 양식업자인 B씨에게는 여전히 믿기 힘든 일인 듯 했다.

그러면서도 B씨는 "제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했다. 실제 이날 새벽 제주시 한경면의 한 양식장에서는 물고기 10여 톤이 이미 폐사했다. 정전으로 비상발전기까지 돌렸지만 전압 문제로 양식장 내 수조 10개에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은 탓이었다.

B씨는 "저도 그렇고 다들 대비를 잘 한다고 했는데 결국 피해를 입었다"며 "이제 태풍이 다 지나갔으니 차차 흙탕물을 치우는 작업을 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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