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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못해준 것만 기억나”…둘이 된 세 여자의 추석남편 사별 후 시어머니·친정어머니 봉양 16년째 박영혜씨
시어머니마저 떠난 뒤 낯선 이들의 위로…“고마움 갚으며 살 것”
  • (서귀포=뉴스1) 안서연 기자
  • 승인 2016.09.1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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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혜씨(67·오른쪽)가 12일 오후 서귀포시 남원읍에 위치한 마더카페 앞에서 친정어머니 홍정임씨(88·왼쪽)와 함께 앉아있다. 2016.09.14/뉴스1 © News1 안서연 기자

“몸은 한결 편해졌는데 자꾸 못해준 것만 기억나서 보내지지가 않네요. 이번 추석도 같이 보냈으면 했는데….”

시어머니 김말선씨(105)와 친정어머니 홍정임씨(88)를 16년째 모시고 살던 박영혜씨(67)는 한 달 전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의 소식을 전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2001년 서울에서 목사로 지내던 남편이 아무 예고도 없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시어머니와 단 둘이 남게 된 박씨는 편찮으신 친정어머니가 걱정돼 셋이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0년 따뜻한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박씨는 집 바로 앞에 ‘마더카페’를 열고 수시로 두 어머니를 들여다보며 안살림, 바깥살림을 도맡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언론(뉴스1 5월6일자 보도 ‘105세 시어머니·88세 친정어머니와의 동행…제주로 온 세 여자’) 등을 통해 알려졌으며, 박씨는 지난 5월 제주지역 효행자에 선정돼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셋 중 누구 하나라도 먼저 떠나면 그 빈자리를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이제는 사돈, 며느리, 딸의 관계가 아니라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불가피하게 맞이해야만 하는 이별의 시간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다.

모두가 잠든 밤 “사모야 고맙고 감사하다”, “옆에 있는 할머니도 고마워요”라고 잠꼬대처럼 읊조리던 시어머니는 지난 8월 6일 남편의 곁으로 먼저 떠나셨다.

추석을 사흘 앞둔 12일 마더카페에서 만난 박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할 일이 없어졌다”며 “눈 뜨자마자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씻겨드리고 욕창이 생길까봐 전전긍긍하고 주사바늘도 들어가지 않아 유일하게 드실 수 있는 죽을 따로 만들어야 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런데 편하다는 생각보다 못해드린 일들만 자꾸 생각나 아직도 보내드리지 못하고 있다”며 “잠결에 허공에 손을 휘휘 저으시면 내가 손을 꼭 잡아드려야 안도감을 느끼고 주무셨는데 밤이 아닌 낮 시간에는 홀로 방 안에서 얼마나 외롭고 두려우셨겠느냐”고 말했다.

그나마 거동이 가능한 친정어머니와 함께 가게에 나와 있을 때면 홀로 시간을 보내야했던 시어머니를 떠올린 박씨는 “아마 더 사실 것 같은 마음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의 죽음으로) 한 번 경험했는데 또 그랬다. 자책감이 든다”며 더 잘해드리지 못해 미안해했다.

두 어머니를 가리켜 “나를 지탱해주는 삶의 원동력”이라고 칭했던 박씨는 카페 마당 한 편에 시어머니의 옷가지를 수북이 쌓아놓은 채 아직 태우지 못하고 있었다.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집 마당에서 박영혜씨(67)가 시어머니 김말선씨(105·왼쪽)와 친정어머니 홍정임씨(88·오른쪽)와 함께 찍은 사진. (박영혜씨 제공) 2016.05.06/뉴스1 © News1

시어머니를 ‘사돈’이 아닌 ‘할머니’라고 부르며 각별하게 챙기셨던 친정어머니도 많이 우셨다. 시어머니가 먼저 떠난 이후 친정어머니는 집에 혼자 계시는 걸 두려워하며 꼭 카페에 따라 나오신다.

그런 어머니에게 박씨는 고된 하루가 끝난 뒤 “발 좀 주물러 달라”고 어린양을 피운다. 비록 손에 힘은 없지만 딸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에 친정어머니는 늘 기쁘게 발을 주물러주시고, 박씨는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며 비로소 잠이 든다고 했다.

박씨는 “엄마마저 떠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 때면 머릿속이 하얘진다”면서 “닥치면 닥치는 대로 살아지겠지만 주무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참 겁이 난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이어 “겁이 나니까 고민이 들어올 새 없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다. 여백이 생기면 삶의 두려움이 몰려올 것이 싫어서 부서지게 일하고 있다”며 “계절이 바뀌니까 다른 게절이 오나보다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힘들어하는 박씨에게 다시 활기를 불어넣어준 건 다름 아닌 낯선 이들의 방문이었다. 마을읍장님을 비롯해 동네 주민들, 제주 이주민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 타지인인 박씨에게 찾아와 “고생했다”, “괜찮다”고 위로를 건넸다.

박씨는 “어느 날은 기사를 보고 찾아온 한 남성이 어머니들이랑 같이 먹으라며 따끈따끈한 보리빵을 사다주고 간 적 있다”며 “자기 일상도 바쁠 텐데 일부러 찾아와서 격려해주시는 게 엄청난 힘이 되고 더 잘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한다”고 말했다.
 

박영혜씨(67·오른쪽)가 12일 오후 서귀포시 남원읍에 위치한 마더카페 앞에서 친정어머니 홍정임씨(88·왼쪽)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2016.09.14/뉴스1 © News1 안서연 기자

친정어머니와 단 둘이 맞게 된 추석. 박씨는 제주에 친척도 없고 육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참이라고 밝혔다. 제주에 이주해온 뒤 명절 때마다 줄곧 해왔던 일이다.

박씨는 “낯선 곳에서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시는 분들과 함께 송편을 빚고 나물 몇 개, 갈비탕, 잡채를 해서 추석 점심을 함께 먹을 계획”이라며 “사실 많은 양의 음식을 장만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대접할 대상이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혼자 왔다가 이제는 가족을 이뤄서 더이상 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박씨는 “이제는 못 보게 돼 아쉽지만 가족이 생겼으니 잘 된 일 아니겠느냐”며 “내가 한 음식을 먹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둘이 맞게 된 추석이 쓸쓸하지 않을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어느 날 갑자기 가장이 돼서 아침에 눈을 뜨기가 겁이 났던 적도 있지만 그때마다 좋은 사람들이 천사처럼 내게 찾아왔다. 평범하게 사는 일상이지만 사소한 것들에 대한 격려들이 힘이 됐다”며 “앞으로 많이 갚으면서 살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박씨는 119소방대원들에 대한 고마움을 언급하며 “시어머니가 편찮으신 적이 많아서 낮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119구조대를 불렀는데 그때마다 구김살 없이 달려와 자기 일처럼 해주셨다. 혼자였다면 막막했을 텐데 큰 힘이 됐다”면서 “119소방대원들에 대한 처우가 더 나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유채꽃 축제가 열리던 제주 서귀포 표선면 가시리 유채꽃밭에서 친정어머니 홍정임씨(88)가 시어머니 김말선씨(105)의 휠체어를 밀어주던 모습. (박영혜씨 제공) 2016.05.06/뉴스1 © News1

(서귀포=뉴스1) 안서연 기자  asy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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