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원스톱 지원서비스’로 긍정 얻은 오춘형(86)씨
변순옥씨(56) 5년째 방문·전화…“연계서비스 더 많았으면”

“(똑똑똑) 어르신 안에 안 계세요? 어르신 문 좀 열어보세요!”

2015년 어느 겨울날 이틀째 연락이 두절된 오춘형씨(86·여) 집을 찾은 생활관리사 변순옥씨(56·여)는 가슴이 철렁했다. 집 안에서 라디오 소리는 들리는데 인기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열쇠 수리공을 불러 문을 열고 들어간 변씨는 태연히 앉아계시는 오씨의 모습을 보고서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오씨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는 바람에 초인종 소리도, 전화벨소리도 듣지 못한 것이었다.

1948년 제주4·3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오씨는 그 이후로 쭉 혼자였다. 슬하에 자녀 3명을 뒀지만 본처의 호적에 올라간 자식들은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 줄곧 혼자였던 오씨의 곁에 5년 전부터 변씨가 함께 했다.

변씨는 가족·이웃 등과 접촉이 없어 고독사의 위험이 높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안부와 안전을 확인하는 제주시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 소속 생활관리사다. 센터는 매주 1회 이상 자택을 방문하고 2회 이상 전화 거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

변씨 혼자 담당하고 있는 독거노인은 오씨를 비롯해 25명. 원칙대로 하기도 빠듯하지만 변씨는 틈이 날 때면 횟수에 제한 없이 불쑥불쑥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하기도 한다.

13일 제주시 도남동 자택에서 만난 오씨는 “방구석에 혼자 있다가 초인종이 울리고 전화벨이 울려서 보면 어김없이 우리 선생님”이라며 “나한테 전화해주는 사람이 없는데 틈틈이 안부를 물어주는 것만으로 큰 의지가 된다”고 말했다.

오씨는 “어떤 날에는 버스를 타고 바깥 구경을 가기도 하고 아픈 곳이 있으면 함께 병원에도 다녀온다”며 “와서 보고만 가도 고마운데 김치도 챙겨주고 아픈데도 물어봐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젊을 때는 혼자라도 괜찮았는데 나이가 들어가니까 이러다가 쓰러지면 어쩌나 걱정이 밀려올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전화가 와서 내 고민을 들어주시고 웃게 해주신다”며 “행복이 별 게 아니고 누군가로 인해 웃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마음을 열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십 년간 혼자 살면서 꽁꽁 닫혀 있었던 문을 열기란 쉽지 않았다고 변씨는 말했다.

변씨는 “아무래도 사람에 대한 상처가 크기 때문에 처음에는 외부인에 대한 의심을 많이 하셨다”며 “하지만 꾸준히 전화 드리고 찾아오니 어느새 마음이 열리셨고 지금은 가족 못지않게 끔찍이 생각해주신다”고 털어놓았다.

변씨는 "함께 한 시간 동안 어르신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이 커졌다”며 “사실 이 일을 하면서 힘든 점도 있지만 뿌듯함이 힘든 걸 넘어서니까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추석을 앞두고 변씨는 오씨와 손을 잡고 제주시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에 가서 어르신 100여명과 함께 송편을 빚기도 했다. 생전 송편 빚을 일이 없었다는 오씨는 정성스레 빚어 온 송편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이번 추석에 꺼내먹을 참이라고 밝혔다.
 

변씨를 비롯한 제주도내 생활관리사 168명(제주시 109명·서귀포시 59명)은 추석연휴 기간 동안에도 독거노인들의 안부와 안전을 챙기기 위해 전화나 방문을 할 예정이다.

제주도에 따르면 9월 현재 기준 도내 거주하는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총 1만7189명(제주시 1만1238명·서귀포시 5951명)으로, 이 중 25%인 4337명(제주시 2812명·1525명)이 원스톱지원서비스를 받고 있다.

생활관리사 1인당 최소 25명의 독거노인을 담당해야하는 부담이 있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어르신들에게 복지 서비스를 연계해드리고 싶어도 사업비가 없어서 그저 마음을 쏟는 것 외에 이렇다 할 경제적 지원을 해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래 제주시독거노인원스톱지원센터 팀장은 “어르신들의 복지 욕구가 많지만 사업비가 따로 없다보니 다 해소해드리기가 어렵다”며 “사회 자원을 발굴해서 복지 서비스를 연계해드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지역이 좁고 큰 기업이 없어서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나마도 원스톱지원서비스를 받는 독거노인들은 처지가 나은 편이다. 나머지 1만2000여명은 이 같은 돌봄 서비스마저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재·가스 누출 등의 위험을 감지하고 위기 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독거노인 응급안전 알림서비스'가 운영되고 있지만 대상자는 370명(제주시 211명·서귀포시 159명)에 불과하며 오작동도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우울증 경감, 상호 돌봄 체계 구축 등을 위해 2014년부터 ‘독거노인 친구만들기’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대상자가 160여명에 그치고 있다. 때문에 독거노인을 위한 돌봄서비스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오씨는 “그 전에는 내 삶에 누군가 문을 두드려준 적 없었는데 선생님이 오셔서 얼마나 활력이 되는지 모른다”며 “모든 것에 만족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이 정도만으로도 행복인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변씨는 언젠가는 닥치게 될 죽음이 있겠지만 독거노인들의 마지막이 쓸쓸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생활관리사를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변씨는 “내가 일하는 동안 아직까지는 한 번도 돌아가셨던 분이 없었지만 주변 동료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참 허망하더라”며 “마지막에는 꼭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연계해주고 있지만 위급상황에도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제주지역 무연고 사망자는 2013년 31명, 2014년 36명, 2015년 47명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사망자 중 남성은 29명, 여성은 8명이었으며 발견 당시 부패가 심해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이들이 10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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