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재심 사건 전담 재판부인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 초대 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54)는 7일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재판의 방향을 잡았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차분히 이임 소감을 전했다.

장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제주지법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주지법 출입 기자단과의 이임 간담회에서 제주 부임 후 3년 간 제주4·3 재심 사건을 맡으면서 느낀 소회와 고충, 바람 등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재심을 청구한 제주4·3 수형인 335명 한 명, 한 명에게 릴레이로 무죄를 선고했던 지난 2021년 3월16일자 재판을 꼽았다.

가장 어려웠던 점을 묻는 질문에 그는 "법대로 심리하고 판단했는데 그 과정이나 결론에 대해서 (보시는 분들이) 다른 시각을 가질까봐 그 점이 가장 두려웠고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일반재판 수형인과 희생자 결정을 받지 못한 수형인에 대해서는 관련 재심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제주4·3특별법 보완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재심을 받을 분들이 3000명이 넘는 상황에서 업무를 더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된 점은 아쉽다"면서 "이제까지 해 온 재판의 성과를 바탕으로 후임 재판장께서 더 잘 이끌어 가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장 부장판사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공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연수원 32기로 춘천지법 강릉지원, 광주지법, 광주고법, 광주지법 목포지원을 거쳐 창원지법 거창지원장을 역임한 뒤 지난 2020년 2월 제주지법으로 발령됐다.

제주 부임 후 그가 제2형사부와 제4형사부 재판장을 지내며 무죄를 선고한 제주4·3 수형인 수만 무려 1000명이 넘는다. 장 부장판사는 최근 전보 인사로 오는 20일 광주지법으로 떠난다.

다음은 장 부장판사와의 일문일답

 

 


- 제주 부임 후 지난 3년 간 대부분의 제주4·3 재심 사건을 맡아 왔다. 인사 발령으로 곧 광주지법으로 떠나는데, 소회가 있다면.
▶평소 제주를 좋아하는 아내가 한 번 제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해 제주로 근무지를 지원했던 게 제주에 온 계기였다. 그런데 부임 후 제주4·3 재심 사건에 관한 업무를 맡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스스로 보기에 당시 저는 제주4·3에 관한 정확한 이해와 지식도 부족한 상태였다. 특히 부임 후 300명이 넘는 제주4·3 군사재판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 청구서가 접수됐을 때는 솔직히 너무 막막했다.

하지만 관련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보고 법정에서 직접 유족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접하면서 관련 재판의 방향을 잡았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만약 내가 유족이었다면 나는 70년 넘게 소외되고 핍박받는 그런 세월을 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앞으로 군사재판 수형인들과 일반재판 수형인들을 모두 합쳐 재심을 받을 분들이 3000명이 넘는 상황에서 업무를 더이상 수행할 수 없게된 점은 아쉽다. 이제까지 해 온 재판의 성과를 바탕으로 후임 재판장께서 더 잘 이끌어 가실 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3년 동안 제주4·3 재심 업무를 하면서 큰 도움을 주신 분들께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모든 순간순간이 기억에 남지만 아무래도 지난 2021년 3월16일 하루에 이뤄졌던 군사재판 수형인들에 대한 본안 재판이 아닐까 싶다.

하루에 20건의 사건, 335명에 달하는 피고인들에 관한 재심 사건을 20분 단위로 본안 기일을 나눈 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어서 재판을 한 날이다.

사건의 규모 뿐 아니라 그 많은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해 법적으로 조금이나마 억울함을 풀어 드렸다는 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재심 사건 재판 때 마다 많은 유족들에게 발언 기회를 준 점도 인상적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재판 기록을 역사적 기록물로 남겨 놓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동시에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발언하는 그 과정에서 70년 넘게 말 한 마디 제대로 못 하고 산 한(恨)이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제주4·3 유족들은 사석에서 조차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 채 살아 오지 않았나. 말을 하는 순간 이념적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까봐, 혹여 자식들이나 손주들 앞길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시간을 마련했다. 속이 후련하다는 분도 계셨고, 반대로 너무 목이 메여 말을 못하겠다는 분도 계셨다. 아마 그 분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려고 하면 몇 날 며칠이 부족할 텐데, 조금이라도 그 분들의 한이 풀렸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우선 제주4·3 당시 재판에 관한 기록이 온전히 보전돼 있지 않아 재심 절차에서 문제되는 세세한 쟁점에 대해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 일례가 전임 재판부에서 한 공소기각 판결과 달리 무죄 판결을 선고한 것이었다.

또 제주4·3 자체가 극도로 혼란한 시기에 이념의 대립이라는 문제까지 겹쳐 이념의 관점에서 제주4·3을 바라보려는 시각이 있는데, 이를 극복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법대로만 판단하는 것도 어려웠다.

재심 절차는 오로지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는지 혹은 전부 개정된 제주4·3특별법의 취지 대로 희생자 결정이 이뤄지면 재심 개시 결정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법대로 판단하는 절차다.

법대로 심리하고 판단했는데 그 과정이나 결론에 대해서 (보시는 분들이) 다른 시각을 가질까봐 그 점이 가장 두려웠고 어려웠다. 후임 재판장도 이 점에 대해서는 고심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제주4·3특별법에 명시된 재심 관련 조항 중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전부 개정을 통해 재심 절차에 군사재판에 관한 직권재심, 희생자 결정을 받은 분들에 관한 특별재심 등을 도입함으로써 진실 규명과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에 큰 진전이 이뤄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재판을 해 보니 희생자 결정을 받지 못한 분들에 관한 재심 절차에 있어 조금 모호한 규정으로 인해 불필요한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주4·3은 제주에서 일어난 사건임에도 당시 재판 인력 미비로 일부 수형인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송돼 재판을 받아야 했는데, 제주4·3특별법의 취지에 따른다면 형사소송법 원칙 대로 모두 제주지법에서 재심 관할 절차를 진행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다음으로 일반재판 수형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직권재심에 관한 규정이 명시적으로 도입돼 있지 않다. 물론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검사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지만 이는 일반적인 규정일 뿐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관해서도 명시적인 입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는 일반재판과 군사재판을 따지지 않고 직권재심과 청구재심에 관한 관계 설정을 위한 조문을 도입하는 것이다.

직권재심은 청구재심을 막는 취지가 아니라 희생자와 유족의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해 국가의 의무로 도입한 절차다. 따라서 희생자와 유족은 재심 절차에 있어 국가의 원조를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직권재심에 있어 명확한 권리구제의 기준과 그 절차의 도입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러한 기준과 절차에 관해 희생자나 유족에게 자유롭게 그 정보를 열람하고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하고, 나아가 유족이 없어 희생자 신고 조차 할 수 없는 수형인들에 관한 직권재심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기준과 절차가 필수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 제주4·3 희생자와 유족, 관련 단체에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주에 와서 '동네 마다 곹은 날 식게집이 하다(동네 마다 같은 날 제삿집이 많다의 제주어)'는 말을 들었다. 많은 희생자와 유족들이 가슴 아픈 것도 용서해야 씻을 수 있다는 말로 그 오랜 세월을 살아낸 줄 알고 있다.

이제 너를 위해, 나를 위해, 모두를 위해 함께 모여 같이 가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여러분, 폭삭 속앗수다(정말 수고하셨습니다의 제주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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