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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트럼프, 침팬지, 그리고 차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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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일까, 도널드 트럼프일까.

오는 11월 9일(현지시간 8일)이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미국의 45대 대통령이 되어 전 세계 TV화면에서 미소지을 것이다. 여론조사 추이로는 지금껏 클린턴이 쭉 유리했지만 최근 들어 판세는 보다 팽팽해졌다. 클린턴에 대한 유권자 호감도가 나아지지 않는데다 폐렴 증세로 응급조치를 받은 후 건강 문제가 불거지는 등 악재가 겹쳐서다..

올해 미국선거의 유권자 투표성향 중에서 특이한 점은 과거 민주당 지지세였던 백인 노동자층이 트럼프 지지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자유무역협정(FTA)과 세계화로 미국경제가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하는 트럼프의 메시지에 대한 이들 백인 노동계층의 공감대가 커지면서 오하이오 주 등 중부 산업지대 등에서 트럼프 지지가 늘고 있다.

불안해진 클린턴 진영은 '민주당 집토끼'인 흑인표 다지기에 바쁘다. 힐러리에겐 젊은 흑인 유권자가 짐이다. 버락 오바마에게 적극적으로 표를 던졌던 젊은 흑인 유권자들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다. 그의 집권 동안 입법된 범죄관련 법안과 복지법안이 젊은 흑인을 불리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투표장에 나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흑인의 클린턴 지지율은 83%로 절대적이지만 젊은 유권자의 기권이 초래할 악영향이 두려운 것이다.

클린턴 진영은 오바마 대통령 부부를 불러들였다. 오바마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게 싫다. 그가 흑인 대통령인 자신의 이미지를 지우려 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클린턴이 성공해야 퇴임 후 자신의 활동 반경이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흑인 단체 초청 모임에서 “투표소에 내 이름은 없지만 우리(흑인)의 진보가 걸린 투표다. 만약 힐러리 클린턴을 찍지 않으면 나에 대한 모독이다”고 연설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처럼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기묘하게 백인과 흑인의 유권자 인식이 과거와는 다르게 얽혀 있다. 선거인단 확보에서 클린턴이 우위를 점하지만 선거 예측을 점점 어렵게 만드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도 ‘트럼프 대통령’을 본격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막말을 즐기는 후보로서 선거가 끝나면 사라질 패러디 대상으로 여겨졌던 트럼프가 올 연말 한국인을 당혹하게 만들 수도 있어서다. 미국의 지식인들이 평가하는 트럼프의 자질과 유권자들의 트럼프 선호도는 일치하지 않는다.

트럼프의 성격과 행태를 놓고 많은 얘기가 나왔다. 최근에 아프리카에서 반평생 침팬지의 행태를 연구해온 영국의 동물학자 제인 구달이 트럼프를 수컷 침팬지에 비유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구달은 미국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행동이 수컷 침팬지가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행동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수컷 침팬지는 경쟁자들에게 위협을 주고 서열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한다. 그래서 눈에 띄는 행동, 예를 들면 땅을 세게 밟거나 치기, 나뭇가지 끌기, 돌 던지기 등을 한다. 수컷 침팬지가 더 격렬하고 창의적으로 그런 행동을 할수록, 더 빨리 집단의 정점에 오르고, 더 오래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트럼프는 나뭇가지를 끌거나 돌을 던지진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성기에 대한 자랑, 인신공격, 인종·성차별적 발언을 했다. 내가 오랫동안 연구해온 수컷 침팬지 마이크가 떠오른다. 그는 석유통을 발로 걷어차는 등 소동을 벌여 경쟁자들을 도망가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등 과도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트럼프와 함께 책을 냈던 토니 스와츠는 더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심각한 집중력 장애가 있기 때문에 복잡한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TV 토론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고함 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며 트럼프가 쓰는 언어는 초등학교 6학년생 수준”이라고 극도로 깎아내렸다.

조지프 나이 하바드대 석좌교수는“트럼프는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감성지능에 문제가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발언을 교묘하게 사용하며 관심을 끌고 있지만 자제력이 부족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고 평했다. 한마디로 대통령이 되기에 성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독재자 우고 차베스의 전기를 쓴 작가 알베르토 티스즈카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트럼프의 행태가 차베스를 빼닮았다는 칼럼을 게재해 흥미를 끌었다. 칼럼내용은 이렇다.

차베스가 집권 전 군인일 때 미인대회를 비롯한 문화행사를 조직하고 주관하길 좋아했는데, 그는 호스트가 되어 직접 손에 마이크를 들고 관객들의 흥을 돋우고 우승자를 발표하는 등 쇼맨십을 발휘했다. 이렇게 해서 청중을 끌어당기는 법을 익혔다.

1992년 차베스 중령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대통령궁을 점령했으나 방송국을 점거하는 데 실패해 체포됐다. 그는 방송 마이크 앞에 끌려나와 저항중인 쿠데타군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1분짜리 연설을 강요당했다. 그 1분 연설이 민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차베스의 운명을 바꿨다. 마이크 앞 1분이 탱크와 기관총보다 영향력이 컸으며 그는 감옥 속의 유명인이 됐다. 석방된 그는 총구가 아니라 투표에 의한 집권시나리오를 짰다.

그는1998년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 2013년 죽을 때까지 4선을 했다. 그의 권력 장악의 무기는 텔레비전이었다. 차베스는 일요일마다 ‘헬로, 대통령’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했다. 직접 노래를 부르고 최근사건에 대해 논평하고 심지어 장관 임명과 해임을 그 자리서 즉흥적으로 했다. 차베스는 이 프로그램을 무려 8시간 7분 동안 진행한 적이 있다.

트럼프도 차베스처럼 텔레비전을 그의 메시지 확장의 도구로 쓴다. 차베스가 좌파 포퓰리스트라면 트럼프는 우파 포퓰리스트인 셈이다. 트럼프의 텔레비전 활용의 본보기는 리얼리티 쇼다. 그는 리얼리티 쇼 ‘어프렌타이스’의 호스트, 심사위원, 시상자 등 다면연기를 하면서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모았다. 마치 차베스가 프로그램 진행 중에 장관을 해임하듯 트럼프는 경연자를 탈락시키면서 “You're fired!"(넌 해고야)란 말을 퍼부어, 이 말이 프로그램의 캐치프레이즈가 될 정도였다.

차베스는 언어의 힘을 완전히 터득한 독재자였다. 차베스가 2011년 “오바마, 당신은 사기꾼이야. 완전 사기꾼이야. 내가 만일 미국대통령 후보라면 당신을 대패시킬 거야”라고 빈정댔다. 트럼프는 비슷한 언어적 기법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비방했다. “오바마는 ISIS창시자다. 그는 창시자다. 그는 ISIS를 창시했다.”

트럼프의 말에는 알맹이가 없다. 트럼프는 경제위기와 세계화로 고통 받고 또 라틴계와 무슬림들에 의해 미국이 오염됐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에게 쉽고 빠른 해결책이 있다는 환상을 주입한다.

차베스는 석유를 내치와 외치의 수단으로 철저히 이용했다. 고유가 시대 차베스의 포퓰리즘 정책은 먹혀들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 국제 유가는 50%이하로 폭락했고 베네수엘라는 파산상태가 되어 석유노동자들이 빵을 구할 돈이 없어 이웃나라로 탈출하는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이미 올해 인플레이션은 700%에 달했다.

알베르토 티스즈카는 하지만 미국정치의 복잡성으로 인해 트럼프가 미국을 파괴의 길로 끌고 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베네수엘라처럼 엉망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가는 미국인만큼 한국인들에게도 중요하다. 5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실험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이 고도화 단계에 이른 상황에서 미국이 어떤 카드를 내놓는가는 한반도의 운명과 관련된 문제다.

어느 나라건 대통령선거전은 카오스 상태를 낳지만 대통령이 선출되고 취임하는 날까지 약 2개월은 거대한 미국에 힘의 공백이 생기는 시기다. 미국인들도 이 기간을 위험한 시기로 생각한다. 11월부터 1월초 미국대통령 취임까지 그리고 대통령취임 100일이 되는 내년 4월까지 한국은 예민한 안보의 계절을 맞을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그 예민함이 극대화되겠지만 클린턴이 당선돼도 긴장의 파고는 결코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 자체가 이제 여유로운 강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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