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성당 신자 피살 사건 피의자가 송치되면서 경찰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국인 범죄 심각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제주지방경찰청 내 외사과 신설이 확정되고 무사증 제도 개선이 공론화된 것은 소기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일했던 사회 안전망 구축에 대한 반성보다는 공치사에 급급했던 수사기관의 행태는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 17일 오전 제주 성당에서 중국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린 김성현씨(61·여)가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김씨는 생전 장기기증 서약까지 해놓았지만, 수사상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 때문에 마지막 뜻도 이루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만 했다.

김씨의 장례 미사를 집도한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는 김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번 사건이) 손님을 접대할 인력과 시설 등 필요한 조건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온 동네 손님들을 넘치게 불러들인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이 제주에 남긴 것은 무엇이고 이 과정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은 무엇인지 되짚어보고자 한다.

◇ 외사과 신설 성과…공 세우기 급급 아쉬움

사건이 벌어진 지난 17일 오전 8시45분 성당에서 기도를 하던 중 중국인 관광객 첸궈레이(50)로부터 습격을 당한 김씨는 “흉기에 찔렸다”며 직접 119에 신고했다. 피습 사실을 전달 받은 경찰은 곧바로 도주한 범인 검거에 나섰다.

경찰은 성당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용의자의 얼굴을 확인했고 현장에 떨어진 가방에서 호텔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발견, 해당 호텔 투숙객이던 첸씨의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이후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해 첸씨가 지난 13일 무비자로 제주에 입국해 22일 출국을 앞뒀다는 사실을 파악한 경찰은 즉각 출국정지를 요청하는 한편 공·항만 일대에서 수색작업을 벌였다.

이 사실이 언론 보도(뉴스1 9월17일자 ‘[단독] 제주 성당서 살인미수 사건 발생…중국인 용의자 추적 중’)를 통해 알려지자 경찰은 오후 2시 “용의자를 2~3명으로 압축해 성당 주변 등을 탐문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용의자를 이미 특정한 상태에서 수사를 벌이고 있음에도 이 같은 사실과는 다른 발표는 도민들의 불안감을 키웠다.

결국 첸씨는 이날 오후 3시51분쯤 경찰의 협조 요청으로 첸씨의 동선을 추적하던 CCTV통합관제센터 관제요원 이모씨(48·여)에 의해 위치가 드러났고, 사건 발생 7시간 만인 오후 4시5분쯤 서귀포시 보목동 길거리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범인은 검거됐지만 사경을 헤매던 김씨는 결국 이튿날인 18일 오전 8시20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무 이유 없이 중국인 관광객에 의해 살해된 김씨의 소식이 전해지자 도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애꿎은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곳곳에서 추모 물결이 이는 가운데 경찰은 20일 범인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관제요원 이씨에게 이철성 경찰청장 명의로 감사장을 전달하는 행사를 가졌다.

물론 이씨의 공을 칭찬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지만 김씨의 장례식도 치러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대적으로 박수를 치는 행사를 연 것은 섣불렀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 사건으로 도민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제주도를 비롯해 경찰, 검찰, 출입국관리소 등은 재발 방지를 위한 비상회의를 여는 등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김씨의 장례미사가 치러진 21일에는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이 직접 제주지방경찰청을 찾아 ‘외국인 범죄 특별치안대책 점검회의’를 열고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는 제주지역 상황에 맞는 치안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 자리에서 홍 장관은 지속적으로 요구돼 온 제주지방경찰청 내 외사과 신설을 약속하며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까지 신설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강신명 경찰청장이 관광 치안 강화를 위해 제주지방경찰청에 외사과가 신설돼야 한다고 요구했음에도 ‘시기상조’라며 이를 승인하지 않았던 행자부가 뒤늦게나마 외국인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허락한 것이다.

그야말로 늑장대응이 아닐 수 없지만 이제라도 관광 치안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에 도민들은 조금이나마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외사과가 신설되면 산하에 외사기획계, 외사정보계, 국제범죄수사대 등 3개 부서가 꾸려져 외국인 범죄 관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이날 점검 회의를 마친 홍 장관은 112종합상황실을 방문해 상황실 근무 상황을 보고 받고 격려금을 전달하며 박수를 받기도 했다. 김씨의 장례가 있던 이날 그동안 미흡했던 치안 상황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이 비춰지지 않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도민 전진호씨(43)는 “도민들은 이제 새벽미사 가는 것도 두려워하고 있다. 강력범죄가 계속 발생하는데도 그거에 대한 대책을 사전에 세우지 못한 경찰도 일말의 책임이 있을 텐데 반성 없이 장례식도 끝나기 전에 자화자찬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전씨는 이어 “잘한 걸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급한 건 아니지 않느냐”며 “공치사를 하기 앞서 재발 방지 대책부터 제대로 세워 도민들의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고 말했다.

◇ 무사증 재검토 기회…제주 특수성 고려한 정부차원 대책 필요

성당 살인 사건을 비롯해 집단 폭행, 뺑소니 등 무사증 중국인 관광객들로 인한 강력범죄가 이어지자 도민들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 정책을 되짚어볼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다음 아고라 청원 게시판에서는 무사증 폐지 서명운동이 진행돼 하루 만에 목표치인 1만 명을 훌쩍 넘어서는 등 무사증 제도를 아예 없애버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서명에 동참한 누리꾼들은 “최소한 살인사건은 막아야지 않을까”, “무사증으로 인해 제주도의 모든 게 무너지고 있다”, “자국민 보호정책이 미개한 수준이다”, “내 고향 제주에서 이방인을 무서워해야 한다니!”, “불안해서 제주에서 못 살겠다”는 등의 댓글을 남겼다.

하지만 일부 관광객의 범법행위로 인해 제도 자체를 폐지한다면 향후 경제적 타격 등이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어 폐지보다는 개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제주시 연동에 사는 김수민씨(34·여)는 “그동안 계속해서 중국인 범죄가 터지면서 치안이 염려됐는데 결국엔 신제주에서 살인사건까지 발생하게 됐다”며 “결국 무사증 제도 부작용을 방치해 놨기 때문에 터질 게 터진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어 “무사증 제도를 폐지해서 제주가 안전해지면 좋겠지만 과연 그게 답일지는 의문”이라며 “신제주 상권 이용객 대부분이 중국인인데 무조건 막았다간 또 다른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2002년 관광객 유치를 위해 무사증 제도(30일간 무비자 체류)를 도입한 이후 제주를 찾는 중국인들이 늘고 있지만 불법체류 등 부작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데 대한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19일 비상대책회의에서 제주 관광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 인력(8명) 증원과 전문적인 기능 확대, 무사증 제도 재검토 등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지자체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 지사는 이 같은 입장을 황교안 국무총리, 홍윤식 행자부 장관, 김현웅 법무부 장관 등에게 알렸으며, 중앙 정부 역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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