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으로 구좌읍 모 양식장 넙치 떼죽음…9억원 피해
9년전 나리 악몽 떠올라…생물피해 19곳·시설피해 114곳

“9년 전 태풍 나리 피해 겪었는데 차바까지…내 운명인가 싶네요.”

6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의 한 양식장에서 만난 김충우씨(49)는 허탈한 표정으로 죽은 넙치 치어가 둥둥 떠 있는 수조를 바라봤다.

지난 5일 새벽 2시 태풍 차바가 몰고 온 강한 바람 때문에 일대가 정전되면서 양식장에 산소 공급이 끊겼지만 김씨는 죽어가는 넙치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상 발전기는 물에 잠겨 쓸 수 없게 됐고 제주어류양식수협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미 다른 지역에 지원을 나간 상태였다.

전력 공급 요청을 위해 한국전력공사에 수십 차례 전화한 끝에 겨우 통화가 이뤄졌지만 “직접 복구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협력업체에 요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출동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5일 오전 태풍이 육지로 물러간 뒤에도 전력 복구 작업은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김씨가 키우던 넙치 치어 50만 마리와 터봇(유럽산 넙치) 성어 50톤 가량은 떼죽음을 당해야만 했다.
 

수십 년간 양식업에 종사한 김씨가 태풍 피해를 입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년 9월 제주를 강타한 태풍 나리 때는 양식장이 물에 잠겨 전량이 폐사하기도 했다.

김씨는 “당시 도지사가 와서 피해상황을 둘러볼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었는데 9년이 지난 시점에서 또 이런 일이 생기니 내 운명인가 싶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양식장을 찾은 제주어류양식수협 직원은 “김씨의 양식장이 도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확한 건 집계해봐야 알겠지만 피해금액이 9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며 안타까워했다.

피해 조사에 나선 제주시 해양수산과 직원도 너무 많은 양에 수량 측정 방식을 정하는 데에서부터 애를 먹었다. 터봇 성어 한 마리당 몇 ㎏인지부터 시작해 12㎝밖에 되지 않는 넙치 치어의 수량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 의논에 의논을 거듭했다.

뜰채를 이용해 치어를 끌어올리던 김씨는 “이제 아예 젓갈이 돼 버렸다”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 같은 재난 상황의 경우 양식재해보험을 통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지만 김씨의 경우에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보험료가 너무 높다보니 양식업자들이 보험 가입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 어류양식수협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재난 지원금이 절실한 상황.

양 행정시와 읍·면·동사무소를 통해 피해 상황을 취합하고 있는 제주도 관계자는 “국민안전처에 제주를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해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라며 “복구 지침에 따라 지원액과 지원방식이 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태풍 차바로 인해 양식장에 생물 피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구좌읍에 있는 또 다른 양식장에서 만난 유상천씨(41)는 “강풍으로 인해 비닐하우스 3동의 차광막이 날아가고 파손됐다”면서 “다시 공사를 하려면 2000만~3000만원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고 걱정했다.

유씨는 “시설물이 무너진 곳도 허다하기 때문에 이 정도 피해만 당한 것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정도”라며 “우리 양식장은 비상 발전기를 돌려서 임시방편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씨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서귀포 남원읍의 한 양식장은 시설물이 내려앉을 정도로 피해가 심각해 약 1억6000만원 가량의 재산 피해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어류양식수협에 따르면 현재까지 태풍으로 생물 피해를 본 양식장은 19곳으로 집계됐으며, 시설물 피해는 114곳에 이른다. 하지만 유씨를 비롯해 아직까지 피해 접수를 하지 않은 곳도 많아 피해 양식장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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