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5회째를 맞은 제주 탐라문화제가 예기치 못한 기상악화와 주최 측의 안일한 준비로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하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예총제주도연합회가 주최한 이번 제55회 탐라문화제는 당초 5일부터 9일까지 닷새간 제주시 탑동광장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탐라문화의 정체성을 전승하고, 제주의 민속과 문화유산, 생활예술을 한 데서 즐길 수 있는 문화축제를 만드는 것이 이 행사의 취지였다.

그러나 4일과 5일 제주에 태풍 '차바(Chaba)'가 몰아치면서 5일 오후 7시 광장 메인무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개막식이 취소됐고, 행사 기간도 7일부터 9일까지 사흘로 축소됐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 날이 개면서 7일에는 무형문화제 축제, 예술문화축제 등 예정된 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됐지만, 태풍의 여파와 주최 측의 홍보 부족으로 행사장은 북적임 없이 한산했다.

잇따른 악재로 8일 오전부터는 행사장에 폭우가 쏟아졌다. 바람도 강하게 불어 높은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광장 옆 도로를 덮치기도 했다. 안전 우려로 메인행사였던 제주문화가장 페스티벌이 취소되는 등 다시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사람들의 발길은 뚝 끊겼다. 사실상 날씨가 안 좋기도 했지만, 막상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부족한 즐길거리에 발길을 돌리기 일쑤였다.

탐라문화제의 특색을 잘 드러내는 무형문화제 축제, 방앗돌 굴리는 노래 등의 전통 행사들이 대부분 무대공연에 의존하고 있고, 실제 참여해 볼 만한 부스 프로그램들은 행사 취지와 연관성이 없이 백화점식으로 나열돼 있었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의 호응이 이어졌던 부스는 제주도 무형문화제 제14호인 '제주도 옹기장' 정도였다. 직접 옹기를 만들려는 관람객들이 줄을 지었다. 나머지 부스들은 개점휴업 상태. 각종 기관 홍보 부스에 관람객들이 관심이 있을리 만무했다.

비가 왔던 8일에는 관람객들에게 우비 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구비돼 있던 우비는 행사 관계자들에게만 배부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무형문화재 시연자들의 경우 대기실 없이 날리는 비를 맞으며 공연을 준비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행사장을 찾은 황종필씨(46)는 "실제 탐라의 문화를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보다 다채로워졌으면 좋겠다"며 "매년 행사장을 찾는데 매번 거기서 거기다. 55년째 열리고 있는 행사인 만큼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였던 관광객 김세미씨(30)는 "행사장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에 놀랐다. 스탭들도 잘 안 보인다"면서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젊은 사람들도 찾아오도록 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고 당부했다.
 

한편 탐라문화제는 1962년 제주예술제로 시작해 2002년 제41회 때부터 지금의 탐라문화제라는 이름으로 개최돼 오고 있으며, 올해 행사에는 약 12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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