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무사고 조종사 “몸 사리는 탁상행정에 5억대 피해”

동북아시아 최초의 프리미엄급 열기구 관광사업이 제주지방항공청의 탁상행정으로 인해 좌초됐다.

아시아인 최초로 아프리카 등에서 상업용 열기구를 조종한 김종국씨(53)는 한국에서도 열기구 자유 관광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에 지난해 4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정착해 ㈜오름열기구투어를 설립했다.

김씨의 ‘열기구 자유여행 사업’은 저가관광 현실을 극복하고 여행수지 적자 회복 등 한국 관광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지난해 6월 한국관광공사 창조관광사업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제주지역 비행 여건 파악을 위해 같은 해 8월부터는 4명이 탑승할 수 있는 소형열기구를 빌린 뒤 제주지방항공청으로부터 비행 승인을 받아 송당 하늘에서 시범운영에 돌입했다.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정석비행장의 항공교통구역과 겹치기 때문에 양해를 구해 비행이 이뤄지지 않는 오전 9시 이전 시간대를 이용했다. 송당마을 주민들에게는 이·착륙 부지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사업의 지분을 나눠줬고, 열기구 이용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6차 산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연계하기로 했다.
 

별 탈 없이 2개월간 시범비행을 한 김씨는 올해 2~3월 또다시 제주지방항공청으로부터 비행 승인을 받아 사업 안전성을 재확인했다.

김씨는 실제 사업에 이용할 열기구를 해외에서 제주로 가져오기 위해 해외제작 장비 도입 시 필요한 등록번호를 부여해줄 것을 요구했고, 제주지방항공청은 지난 5월 선뜻 등록번호를 부여해줬다.

글로벌 열기구 제작업체인 영국의 카메론 벌룬즈가 제작한 열기구는 7월 한국에 들어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장비 안전검사까지 아무 문제없이 통과했다. 여기에는 3억원이 소요됐다.

이제 항공레저스포츠사업 등록 절차만을 남겨둔 상황. 그런데 서류 접수를 앞두고 제주지방항공청 관계자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김씨는 “서류를 접수하려고 하자 담당자가 기존에 허가를 내주던 비행구역을 축소해 신청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열기구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해진 지점에서 이륙해 정해진 지점으로만 착륙하라고 요구했다”며 “잘 해보라면서 열기구 사업을 독려하던 사람이었는데 막상 사업을 앞두고 부정적으로 입장이 바뀌었다”고 토로했다.

해당 담당자의 요구대로 비행구역을 축소해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추가 서류 요청 등으로 인해 행정처리기일(14일)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10월 7일에야 최종 검토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 ‘불허’였다. 현행 항공법 제140조의2항에 따라 항공레저스포츠 활동의 안전사고가 우려되므로 사고예방 등을 위해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주지방항공청의 입장이다.

현장실사도 없이 이 같은 결정이 내려지자 김씨는 “열기구를 직접 타보거나 어떻게 운영되는지 직접 보지도 않고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우려 때문에 승인을 해주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야말로 탁상행정이 따로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서울지방항공청의 경우에는 경기 수원 화성에서 운영되는 계류식(밧줄로 고정된 채 위·아래로 운영) 열기구 사업 허가 당시 직접 현장에 찾아가 비행구역을 비롯해 기체, 안전관리시설물 등에 대한 점검을 한 뒤에야 최종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에 따르면 담당자의 태도가 바뀐 건 지난 7월 미국 텍사스에서 열기구가 고압선에 걸려 추락하면서 탑승객들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부터다.

김씨는 “당시 조종사는 음주운전 전과가 4번이나 있는데다 마약 범죄로 복역까지 한 사람이었다”며 “이런 논리라면 자동차나 비행기 모두 안전사고 우려로 운행을 하면 안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김씨는 이어 “비행구역 내에 풍력발전기와 고압전력탑, 오름 등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사업을 허가해줄 수 없다고 하는데 그럼 지금까지 시범운영은 왜 허가를 내준 것이냐”며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안전하게 운행됐다는 걸 잘 알면서도 비약한 논리로 사업을 좌초시키려고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정석비행장과 비행공역 중첩 가능성이 있고 제2공항 예정지인 서귀포시 신산리와 근접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한 것도 어이없다”며 “그동안 정석비행장과 비행시간이 겹치지 않도록 줄곧 조정해왔고 제2공항은 아무리 빨라도 10년 후에 생기기 때문에 이전까지는 문제없다”고 말했다.

사업 추진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송당마을 주민들 역시 한숨을 늘어놓았다.

고정식 송당리장은 “마을에서 부지 1만5000평을 제공하는 등의 조건으로 지분을 갖고 마을 특화 사업으로 도입을 확정했다. 마을 이미지에도 좋고 관광객들이 오면 열기구만 타고 가지 않을 것 아니냐”며 “빨리 승인이 떨어져서 우리 마을의 친환경적인 사업이 됐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제주지방항공청 담당자는 “현장실사는 열기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보는 게 아니라 비행승인을 요청한 반경 7㎞ 이내 구역에 대해서 이뤄졌다”며 “직접 송당리를 방문해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접적인 불허 사유와 관련해서는 “열기구가 바람을 따라 가는 것이다 보니 안전착륙이 안 된다. 사업자가 한 번 와서 직접 보라고 하는데 가서 볼 게 없다”며 “고정된 착륙장소를 만들면 재검토를 할 의향은 있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허가를 내주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씨는 “해외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열기구는 비행승인 구역 내에서 적정한 장소를 찾아서 착륙하도록 돼 있다. 열기구의 특성에 대해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만약 기상 악화 등 안전상에 문제가 있을 시에는 애초에 열기구를 띄우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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