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 세계를 품는다] 4. 78세 해녀에게 듣는 숨비소리

[편집자 주] 제주인의 어머니, '제주해녀'가 세계인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가 10월31일 제주해녀문화에 대해 등재권고 판정을 내려 사실상 등재가 확정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뉴스1 제주는 제주해녀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5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1일 오전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에서 만난 해녀 김옥자씨(78)는 여기저기 기운 고무 슈트를 가리키면서 “이 잠수복으로 우리 자식들을 다 먹여 살렸다”며 추웠던 지난 세월을 꺼내 놓았다.

◇ 오로지 물질만으로 버틴 60여년
13세부터 성산 앞바다에서 헤엄치며 놀던 김씨는 15세부터 바닷속에 들어가 소라와 전복 등을 캐오기 시작했다. 해산물들은 가족들의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하고, 팔려 나가서 용돈이 되기도 했다.

17세에는 경남 남해군 사량도 메주목에 건너가 성게를 땄다. 경남에서 경북으로, 강원도로, 충청도로. 20세에 결혼을 하기 전까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물질을 했고 육지 해녀들에게 물질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버스 운전기사로 일했던 남편에게 의지해 3년간은 바다에 나가지 않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가장이 된 김씨는 33세에 또 다시 바다로 나가야만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고자 시아버지에게 어린 4남매를 맡겨놓고 일본에 가서 물질을 하기도 했다. 20여명 정도가 한 배를 타고 나가서 2~3개월쯤 빨간 성게를 채취하고 오면 한동안은 아이들 학비와 식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당시에는 육지에서도 일본에서도 해녀들이 별로 없었어. 제주 해녀들이 가서 물질하는 걸 알려줬지. 사실 알려준다는 생각은 없이 돈 벌러 나갔는데 함께 일하다보니 익히게 된 거였어.”

어릴 적 대수롭지 않게 배웠던 물질이 평생의 생계를 책임지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속곳(물질할 때 입는 속옷. 일명 물소중이)과 물적삼(얇은 흰 무명옷)만 입은 채로 물속에 들어갈 때도 고생인줄 몰랐다. 온 몸이 어는 것 같았지만 할 줄 아는 일이 오로지 물질 하나였기 때문에 매일 바다에 나갔다.

1970년대에 들어 고무로 만든 잠수복이 생기면서부터 30분에서 1시간 내외였던 작업시간이 3~5시간으로 늘어나게 됐고 소득이 월등히 오르게 됐다.

하지만 자식들 먹여살리기 바빠 작업을 하다 고무옷이 찢어져도 수 십 만원에 이르는 옷 한 벌을 사지 못해 꿰매 입고 고무를 덧대서 입었다.

몇 년 전부터 제주도에서 해녀 지원 정책의 일환으로 현직 해녀들에게 잠수복을 지원해주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복장 걱정은 하지 않게 됐다.

“정직하게 물속에서 고생해서 번 돈으로 2남2녀 공부 시키고 결혼까지 다 시켰어. 누구한테 손 한 번 벌리지 않고 애들을 키울 수 있던 건 조건 없이 다 내어준 바다 덕분이지.”

해녀가 된 걸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 없다는 김씨는 다만 이 좋은 시절을 10년만이라도 더 일찍 맞이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 인정받기 시작한 제주 해녀의 가치 ‘자부심’
 

4년 전, 김씨는 74세의 나이로 해녀공연단의 배우가 됐다. 마을에 아쿠아리움이 생기면서 수족관에서 잠수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해녀가 있는 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물질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박수갈채를 쏟을 때면 이게 행복인가 싶다고 김씨는 말했다. 천하게만 여겨졌던 해녀의 가치를 비로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김씨의 제주해녀 알리기는 해외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4월에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세계 최대 해양박람회 아덱스(ADEX)에 참가해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아무 장비 없이 수족관 깊이 들어가서 물건을 건져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니 외국 사람들 반응이 좋더라고. 국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제주해녀를 인정해주는 모습에 뿌듯하고 내가 허투루 살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제주 해녀의 가치에 대해 깊이 공감한 김씨의 손녀(30)는 할머니의 대를 잇겠다며 해녀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에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확고한 손녀의 뜻에 결국 김씨는 가치를 잇는 일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주말이 되면 손녀와 손을 잡고 신양리 바다로 향하는 김씨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로 제주 해녀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는 것에 대해 두 손 들고 환영했다.

다만 김씨는 “고령화된 해녀들이 물속에서 숨지는 걸 막기 위해 행정에서 물질을 하는데 연령제한을 두는 등 제지를 가할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위상이 높아질수록 담당 공무원들의 책임도 늘어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과도한 규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것이다.

김씨는 “사실 물질을 하던 사람이 안하면 그게 더 아프다. 나는 죽을 때까지 물질을 할 거다. 물에서 죽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녀는 이제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해녀를 하나의 문화로 보는 것도 좋지만 상징적으로만 보지 말고 해녀가 지속적으로 양성될 수 있도록 부가가치를 부여해 실질적으로 소득과 연결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뉴스1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