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대란, 기로에 선 제주] 1. 넘치는 생활쓰레기

[편집자 주] 제주도의 '쓰레기대란'이 눈앞에 닥쳤다. 제주시와 서귀포시가 쓰레기 문제에 대한 강력한 수요억제책을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예고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지수다. 쓰레기를 처리할 인프라가 포화상태이기 때문이다. 뉴스1제주는 제주가 직면한 '쓰레기대란'의 실태와 구조적 문제, 개선점을 7회에 걸쳐 살펴본다.
 

"제주도 쓰레기대란의 주범은 제주도민이지. 남 탓할 때가 아니야!"

늦은 밤 쓰레기로 뒤덮인 클린하우스 주변을 정리하던 70대 백발노인은 분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널브러진 쓰레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것이 바로 제주 시민의식의 민낯"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8일 오후 8시 제주시 노형동 제주한라대학교 주변 주택 밀집지역. 골목길 사이로 틈틈이 보이는 클린하우스들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식탁과 의자, 유모차, 서랍장, 컴퓨터 모니터, 이불, 기름통에 쓰레기로 꽉 찬 형형색색 비닐봉투들이 한 데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클린하우스를 찾는 이들은 아무런 표정 없이 쓰레기더미를 한 겹 더 쌓을 뿐이었다.

다른 동네도 마찬가지였다. 몇 안 되는 공공근로자들이 지정 구역을 돌며 클린하우스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지만, 치우기 무섭게 이내 곧 불법투기가 이어졌다.

이날 밤도 그랬고, 이튿날 밤도 그랬다. 공공근로자들은 "내일 밤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 클린하우스 도입 10년째…'무단 투기장' 전락
클린하우스는 쓰레기 배출과 수거가 한 데 이뤄지는 거점을 말한다.

제주시는 재활용률 제고, 도시미관 향상, 행정비용 효율화 등을 들어 2006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클린하우스'를 도입했다. 올해가 도입 10년째 되는 해다.

제주시 삼도1동에 처음 32곳이 설치됐던 클린하우스는 올해 8월 말 현재 제주 전역에 무려 2660곳으로 늘어났다. 제주시에는 2037곳, 서귀포시에는 623곳이 있다.

이 가운데 이주붐과 건축붐이 분 제주시 연동과 노형동, 아라동에는 한 골목길 너머 하나씩 클린하우스가 설치돼 있다. 불과 50~100m 정도에 불과한 거리. 현재 이 지역에는 각각 250여 곳의 클린하우스가 운영되고 있다. 모두 주민편의를 위해서다.

그러나 우후죽순 생겨난 클린하우스는 최근 '무단 투기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분리수거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쓰레기가 하루 1184톤(8월 말 기준)에 달해 기존 매립·소각장이 포화 직전에 이르면서 쓰레기가 제 때 수거되지 못하는 문제로 악취 등에 따른 이설·철거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또 그동안 클린하우스의 경우 공간확보 문제로 주로 민간 소유의 공한지나 이면도로에 설치돼 왔는데, 최근 해당 부지 토지주들의 환수 요구에도 부딪치고 있다.

결국 이로 인해 2013년 73곳, 2014년 84곳, 2015년 105곳의 클린하우스가 철거됐다. 올해도 150여 곳의 클린하우스가 철거된 것으로 잠정 추산되고 있다.
 

◇ CCTV 단속 효과 미미 '무용지물'…마비된 청소행정
제주도는 클린하우스 쓰레기 불법투기를 막기 위해 제주시 클린하우스 537곳(고화질 408개·저화질 129개), 서귀포시 클린하우스 283곳(고화질 43개·저화질 240개) 등 클린하우스 820곳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

설치 비용은 고화질의 경우 1대당 300만원, 저화질의 경우 1대당 150만원선으로, 그동안 클린하우스 CCTV 설치사업에는 약 20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단속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CCTV 단속률을 보면 제주시의 경우 2014년 11%, 2015년 15%, 올해 23%(10월 말 기준), 서귀포시의 경우 2014년 0%, 2015년 0.4%, 올해 12%(8월 말 기준)에 그치고 있다.

결국 쓰레기 불법투기를 막기 위해서는 인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현재 동(洞)지역은 행정시 본청의 통합수거로, 읍·면지역과 인구수가 많은 제주시 연동·노형동·이도2동 지역은 자체수거 방식으로 쓰레기가 처리되고 있다. 사실상 읍면장의 책임 아래 쓰레기 수거 처리가 이뤄지면서 일선 생활환경업무는 마비 상태다.

전국공무원노조 제주시지부 관계자는 "환경미화원, 청소차량 운전원, 대체인력(공공근로자)만 900명이다. 여기에 클린하우스 지킴이 600명, 읍면동 자생단체 회원, 담당 공무원들까지 가세하고 있다"며 "업무를 떠나 경제적 측면에서 과연 이게 효율적인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 "효율 고려해 민간위탁 검토해야…단속체계 강화 필요"
제주도는 생활쓰레기 발생량을 억제하는 데 주력해 지난해 56%였던 재활용율을 2020년까지 60%까지 향상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클린하우스를 단계별로 철거해 지역별로 클린하우스 3개 규모의 '준광역 클린하우스'를 신설하고, 광역자원회수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와 함께 각 행정시에서도 내년부터 생활쓰레기 요일별 배출제, 생활쓰레기 배출시간 제한 등의 조치에 돌입할 예정이다.

배재근 서울과기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도시미관 향상과 수지분반 효율 측면에서 전세계 수거체계가 클린하우스와 같은 거점수거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도 "다만 인력과 예산에 한계가 있다면 행정의 철저한 관리감독을 전제로 한 민간위탁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 교수는 또 "클린하우스를 준광역화 하는 과정에서는 재활용 선별장이 있는 만큼 주민편익을 고려해 과도한 재활용 세분화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의회 김경학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 구좌읍·우도면)은 "생활쓰레기 발생량을 자체를 억제한다는 정책 방향은 옳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읍면지역 클린하우스의 경우 현재 합법적인 쓰레기 무단 투기장으로 전락하고 있어 과거처럼 일정 시간 집 앞에 쓰레기를 배출하는 문전수거 방식을 대안으로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도의회 환경도시자문위원인 류성필 박사는 "생활쓰레기 요일별 배출제, 생활쓰레기 배출시간 제한 등이 원활히 추진되려면 체계적인 단속이 뒷받침 돼야 한다"며 "현재 10만원선인 과태료를 최소 100만원선으로 올리고, 신고포상금도 이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개선하는 등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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