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소식에 많은 한국 지식인들은 이념의 스펙트럼을 넘어 당혹감을 느꼈을 법하다. 이런 당혹감은 국내 정치의 카오스 상태, 경제위기, 북핵 문제 등 한국에 미칠 트럼프의 부정적 변수가 마음을 압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트럼프의 수많은 기행만 알 뿐, 그의 실제 판단력, 문제해결 능력을 거의 모른다.

트럼프는 기존 미국 정치인들과 달리 부동산개발 사업으로 돈과 명성을 얻었고 결국 이를 기반으로 백악관 주인이 됐다. 트럼프가 공화당 예비선거 선두주자로 잘나가던 지난 1월 뉴욕타임스가 그의 부동산 비즈니스 협상 스타일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그가 보였던 부동산 협상 스타일이 어쩌면 그의 대통령 직무 스타일을 가늠해보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맨해튼 5번가(5th Avenue)는 글로벌 자본주의 수도인 뉴욕의 대동맥이다. 돈이 만드는 화려함은 이곳에 모두 몰려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록펠러센터,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센트럴파크를 따라 늘어선 최고급 아파트, 그리고 티파니 등 세계적 명품을 파는 쇼핑 갤러리가 즐비하다. 티파니 바로 옆에 금빛 찬란한 58층 트럼프 타워가 솟아 있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가 1983년 야심차게 지어 33년간 부동산개발사업, 리얼리티 TV쇼, 대통령선거운동의 사령탑으로 사용한 곳이다. 45대 미국 대통령을 만든 작업장이었다고나 할까.

트럼프타워로부터 두 블록 떨어진 곳에 프랑스 고성 같은 19층짜리 건물이 있다. 1907년 건축한 뉴욕의 사적(史蹟) 중 하나인 플라자호텔이다. 800개의 객실을 가진 르네상스풍의 이 호텔은 권위와 호화로움의 상징으로 세계적 연예인 등 명사들이 묵고 싶어 하는 곳이다. 1964년 뉴욕에 공연하러 갔던 비틀스가 묵었고, 1985년 G-7재무장관들이 이곳에 모여 달러화 가치를 낮춘 ‘플라자협정’을 끌어냈다.

트럼프가 이 호텔을 사들여 잠시 소유한 적이 있었다. 명품 컬렉션을 수집하듯 이 호텔을 사들였지만 경영 부실로 소유권을 잃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공화당 예비선거 운동에서 플라자호텔 거래 협상을 자신의 승리라고 우기며 자랑했다. 또 그는 기업의 중역실에서 단련된 자신의 역량이 세계 지도자들과 협상하는 데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전문가와 여론조사기관의 자문보다 자신의 감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백악관 도전 방식이 플라자호텔 거래 스타일을 거울에 비춘 것처럼 닮았다”고 평했다.

그가 자랑하는 부동산 사업가로서의 그의 거래 혹은 협상 스타일은 실제로 어땠을까. 사람의 행동 스타일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앞으로 4년 길면 8년, 국제 사회는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을 놓고 부산을 떨 것이다. 플라자호텔을 둘러싼 트럼프의 ‘소유와 상실’ 과정은 그가 세계 주요 지도자들과 어떻게 협상하고 이슈를 풀어나갈 것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가 된다.

1988년 웨스틴호텔 체인 소유자인 억만장자 로버트 배스는 플라자호텔의 처분을 부동산 전문가인 톰 버랙에게 위임했다. 플라자호텔 경매에 관한 정보가 트럼프의 레이다망에 걸렸다. 트럼프는 당시 41세. 20대 청년 때부터 플라자호텔을 소유하는 게 꿈이었던 트럼프는 마치 마음에 맞는 미술품을 찾은 듯 움직였다. 트럼프는 버랙에게 전화를 걸어 “30분만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트럼프타워로 버랙을 불러들인 트럼프는 단도직입적으로 호텔을 경매에 내놓지 말고 자신에게 팔라고 말했다.

부동산 거래에는 두 가지 큰 변수가 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합의하는 최초 가격과 우발채무다. 우발채무란 최초가격에 합의한 후 감정에 의해 건물의 하자가 나타날 경우 이를 고치는데 들어가는 비용조건이다. 즉 최초가격에서 우발채무만큼 깎아 내려 거래가가 성립된다.

트럼프가 경매에 내놓지 말라고 말했을 때, 버랙은 우발채무를 염두에 둔 계책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트럼프는 달랐다. 흥정이 시작되었다. 버랙은 ‘경매에 내놓으면 10여명이 구매자가 참여할 것이고 플라자호텔 가격이 5억 달러까지 기대된다’고 말을 띄웠다. 트럼프는 3억9000만 달러를 당장 내어 놓을 테니 팔라고 제안했다. 버랙은 ‘소유주가 4억1000만 달러의 가격을 제시했다’고 응수했다. 트럼프가 다시 가격을 4억750만 달러로 높여 제시함으로써 쉽게 합의에 이르렀다. 우발채무 조건은 없는 것으로 했다.

그런데 거래 가격에 합의한 후 갑자기 트럼프는 “부동산에 문제가 있거나 고칠 게 있으면 말해 달라”고 버랙에게 말했다. 버랙은 깜짝 놀라며 “우발채무는 없다는 얘기를 했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 이때 트럼프가 한 말은 “이건 계약서에 들어갈 얘기가 아니다. 건물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고치는지만 얘기해 달라.” 수십명의 전문가를 투입하여 파악하게 된 정보를 ‘적진’에 그냥 준다는 게 거부감을 주었지만, 버랙은 트럼프를 믿어보기로 했다.

버랙은 플라자호텔 임대차보호권을 갖고 있는 입주자 패니 로웬스타인의 존재를 알려주고 만다. 로웬스타인은 플라자호텔 내에 있는 작은 임대차보호 아파트에 35년 동안 살고 있는 80대의 독신 할머니였다. 뉴욕에서는 임대차보호 대상 입주자에게 임대료를 건물주가 맘대로 올려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로웬스타인 할머니는 사글세 500달러만 내며 살고 있었다. 트럼프는 플라자호텔을 비싼 가격에 인수하면서 콘도미니엄 스타일로 개축하고 싶었는데 이 임대차보호 아파트 때문에 안 될 판이었다.

트럼프는 플라자호텔 거래 완료 조건으로 이 임대차보호 아파트문제를 해결하도록 요청했다. 이때 트럼프가 버랙에게 한 말은 이렇다. “일주일 안에 거래를 완료할 터이니 그때까지 내 귀에 패니 로웬스타인이 매우 행복해 한다는 얘기가 들어오게 해주오.” 버랙은 할머니를 설득해서 임대차보호권리를 포기하는데 성공했다. 플라자호텔 안에서 전에 살던 곳보다 10배나 넓은 아파트에 평생 공짜로 살게 해준다는 조건이었다. 필요한 살림살이 가구와 피아노도 사주었다.

4억 달러가 넘는 플라자호텔 거래에서 보여준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은 외부 컨설턴트의 자문 없이 혼자 직감으로 결정하는 것이었다. 마치 그가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을 하면서 컨설턴트와 여론조사 전문가에 별로 의존하지 않았던 것과 비슷하다. 트럼프의 비즈니스 스타일의 한 면모다. 그가 매력을 발휘하여 다른 지도자들과의 협상을 이끌지, 적법절차(protocol)를 무시한다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는 협상하면서 어떤 협상 상대가 되어주기를 원하는지를 직감으로 파악하고 그렇게 접근해왔다는 게 그와 협상했던 사람들의 견해다. 트럼프의 그런 협상 재능은 선거유세에서도 발휘되었다는 것이다. 대중연설을 할 때 트럼프는, 단둘이 앉아서 거래를 협상할 때 상대방을 읽어내는 것처럼, 정확하게 청중의 마음을 파악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건 트럼프의 포퓰리즘 언행이 나오는 배경이다.

플라자호텔 인수 후 트럼프의 호텔 경영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호텔 내부를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그 디자인 업무를 부인 이바나에 맡겼다. 이바나가 요구한 대가는 연봉 1달러와 그녀가 사고 싶어 하는 모든 옷을 다 사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행한 호텔 보수 작업은 싸구려 분위기가 풍기는 실내 디자인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는 플라자호텔의 명성에 홀려서 비싼 가격을 지불했다. 대통령에 도전하기 전 트럼프는 언론 인터뷰에서 “내 생애에서 가장 비경제적인 거래를 했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1990년 호텔은 4000만 달러의 흑자를 내야 손익분기점이 되는데 오히려 7400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트럼프는 시급한 플라자호텔 자금문제에 시간을 집중하지 않았고 다시 새로운 부동산과 기업헌팅에 나섰다. 이스턴 에어셔틀을 인수하는데 3억여 달러, 트럼프타지마할카지노를 개장하는데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자금에 쪼들렸고 개인보증으로 은행융자를 받으면서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플라자호텔의 적자를 막는 것도 급급한 일인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항공사와 카지노를 시작하다니 욕심이 과해도 너무 과했던 것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트럼프의 큰 단점은 집중력 결여다. 한 가지 거래를 완료하고 사나흘 못 가서 그 사업에 관심을 잃어버리고 다른 기업사냥감을 찾아 나서거나 여인이나 모델을 찾아다녔다. 이런 집중력 결여와 미국 부동산경기 하락으로 트럼프는 개인파산의 위기에 몰렸다. 트럼프는 채권은행단의 개입으로 개인파산은 피했으나 플라자호텔 소유권은 채권은행단으로 넘어갔고, 채권단이 사우디왕자와 싱가포르의 합작회사에 매각했다. 여기서 트럼프는 플라자호텔이 팔리는 순간까지 자신의 소유였다고 허풍을 떨었다. 그의 허풍은 대선과정에서 우리가 계속 보았던 일이다.

부동산 사업가로서 트럼프는 부동산 명품 수집가처럼 행동했다. 플라자호텔 거래가 전형적이다. 그런 트럼프가 세계 최고의 권력 사냥에 성공했다. 얼핏 생각하면 이제 그에 대한 세상의 관심과 그의 지위도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세계 정상이 되었다. 재미있는 상상은 그가 4년간 공짜로 차지할 부동산으로서의 백악관을 어떻게 꾸밀까 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동산업자 출신인 그가 추구하는 다음 목표가 무엇인가다. 그의 사업영역은 기업세계에서 국제정치로 확대되었다. 세계의 리더들과 협상하는데 자신이 적합하다고 자랑했던 그의 협상솜씨가 돈만으로 통하지 않는 국제 정치의 영역에서도 잘 먹힐까. 그는 까다로운 타국의 국가 원수들에게 어떤 협상파트너가 될 것이며 어떤 스타일의 국가 원수를 좋은 협상대상으로 생각할까.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햄버거를 먹으며 협상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트럼프는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해 즉흥적으로 해본 말인가, 아니면 김정은과의 거래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멋있는 이벤트가 거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국내정치의 리더십 위기를 맞은 한국인들은 트럼프의 등장으로 이래저래 불안하고 불확실한 시절을 살아야 할 것 같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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