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혼듸 살아요] 4. 최한정 제주예술동행 대표
오해와 견제에도 소통 노력 멈추지 않아…행정 노력 당부

[편집자 주] 제주가 연간 전입자 수 10만 명 시대를 맞이했다. 이주민들이 제주 곳곳에 스며들면서 제주민들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제주에 애정을 품고 온 이주민들은 더 나은 제주를 위해 ‘나’와 더불어 ‘우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혼듸(함께의 제주말) 제주’를 2017년 대주제로 내건 뉴스1 제주본부는 ‘제주에 혼듸 살아요’라는 주제로 올 한 해 동안 2주에 한 번씩 이들의 고민을 담아보고자 한다.
 

이웃의 ‘곁’이 되기 위해 음악으로 자꾸 말을 건네는 이가 있다.

비영리문화예술단체법인 제주예술동행를 이끌고 있는 최한정 대표(53)다.

25년간 치열한 광고시장에서 용병으로 떠돌던 최 대표는 2011년 무거운 행낭을 내려놓고 제주행을 택했다.

전쟁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최 대표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바다로부터 1m 떨어진 곳에 지친 마음을 풀어 놓았다.

대문이 없는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최 대표와 아내 둘 뿐이지만, 드나드는 손님들과 음악들로 넘실거리는 날들이 많다.

◇ 음악으로 건넨 인사…무색한 귀농귀촌협의회
 

최 대표의 집 마당에서 공연이 열리기 시작한 건 2014년 봄부터다.

제주에 발 딛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지역주민들을 위한 음악회를 연 것이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 인프라가 부족한 제주에서 황홀한 음악에 취해도 보고, 선주민과 이주민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길 바랐다.

뜻이 맞는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비영리단체법인 ‘제주예술동행’을 꾸려 국내·외 뮤지션을 섭외하고 지역주민들을 초대했다.

첫 공연부터 지금까지 재즈, 탱고, 퓨전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회가 22차례나 열렸다. 맨 앞자리에서 음악에 흠뻑 취해간 이들도 있고 돌담 너머로 슬쩍 보고만 가는 이들도 있었다.

최 대표는 “음악을 통해 마음을 열고 이웃들 간에 서로 눈인사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시작한 게 벌써 3년이나 흘렀다”며 “눈에 한 번씩 넣어두고 나니 마트나 아이 운동회에서 마주쳐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사를 나누게 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바당1미터’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최 대표가 손님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회를 연다는 추측들이다.

단 한 번도 입장료를 받은 적도 없고 카페를 이용해야 한다는 얘길 꺼내본 적도 없는 최 대표는 “그저 내가 제주에 와서 번 것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진정성을 왜곡해서 속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카페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며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문화 나눔을 통해 서로를 이웃으로 인정하길 바랐지만 주변의 ‘오해’와 ‘견제’ 속에서 최 대표는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는 소통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시내권이 아니라 이 시골에까지 찾아와 사는 사람들은 진짜 제주가 좋아서 온 사람들”이라는 최 대표는 이주민들이 마을에 스며들 수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 구좌귀농귀촌협의회장을 맡았다.

3년 전쯤 행정에서 읍·면 단위별로 귀농귀촌협의회를 꾸리겠다고 나서자 선뜻 응한 것이다. 하지만 조직만 꾸려놓고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아 ‘전시행정’에 그치고 있다는 게 최 대표의 지적이다.

최 대표는 “협회장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전입자 현황을 열람할 수 있냐고 문의했지만 개인정보라고 안 된다는 등 원론적인 입장만 고수했다”며 “고작 몇 명만 불러서 협의회를 만들어놓고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주민들은 대부분 30~40대가 주를 이뤄 마을에 건강한 젊은 식구들이 늘어나는데도 활용할 줄 모른다”며 “마을 자치에 참여할 기회를 원천 봉쇄당하고 있는데도 행정에서는 너무 방치해놓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 원주민·이주민 융화 기구 필요…행정이 적극 나서야
 

최 대표는 이주민들이 좀처럼 원주민들과 섞이지 못하는 이유로 ‘공동체 문화’를 꼽았다.

그는 “이주민들끼리 항상 하는 얘기가 있는데 제주는 지역마다 궨당(친·인척)문화와 어촌계문화가 굉장히 강하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물리적·화학적·생리적·정서적·역사적 그 어떤 것으로도 그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공동체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가장 큰 건 금전적인 이유”라며 “공동체별로 갖고 있는 자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다. 누가 그 안에 들어가면 나눠가져야 하기 때문에 이웃으로 받아주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또 “원주민들 중 정치적인 분들은 이주민들끼리 모이는 걸 경계하기도 한다. 마을마다 공동자산이 있는데 지분을 요구할까봐 우려하는 것”이라며 “심지어 어느 마을은 이주민 2~3명이 모여서 얘기하고 있으면 이장이 모여 있지 말라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마을의 경우에는 이주민이 과반 이상의 표를 얻어 이장에 선출됐는데도 납득할 수 없다며 재투표를 요구한 경우도 있다고 했다.

최 대표는 “최근 2~3년 사이에 이주민들이 우르르 들어오니 선주민들도 너무 갑작스러울 거란 걸 안다”며 “하지만 마을 경제활동의 한 축을 담당하며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은 게 이주민들인데 무조건 배척할 게 아니라 지혜롭게 어울릴 수 있는 협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무서운 속도로 이주민들이 불어나고 있는데도 완충 역할을 해줄 여건은 전무한 상황.

최 대표는 “10~20년이 흐르면 원주민과 이주민간의 비율이 물타기가 돼서 어느 마을은 이주민들의 비율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이주민들을 더 이상 이방인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라며 “하루 빨리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노사 관계를 푸는 게 노사정 회의이듯 제주의 미래를 위해 이제는 행정당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며 “대표자를 뽑아서 입장을 정리하고 타협을 통해 분쟁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차례 넘어져도 ‘이웃’을 향한 고민을 멈추지 않고 있는 최 대표의 인생 3대 지침은 ‘즐겁게 살기’, ‘결과 만들기’ 그리고 ‘모두와 함께 나누기’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소재 다희연 인근에 위치한 선새미목장에서 오프로드 체험을 운영하고 있는 최 대표는 앞으로의 꿈을 묻는 질문에 “국제적인 체험형 레저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제주 관광 패러다임을 변화시켜볼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좋아하는 일로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최종 목적은 공익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이라며 “공동체에 들어갈 수 없다면 공동체를 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지난해 제주도로부터 자원봉사단체 재난긴급분야 인증을 받아 도내 사륜구동차 90여명과 함께 긴급 재난 상황 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1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