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만마리 예방적 살처분…400여명 현장서 땀 뻘뻘“
청정 제주 지키려는 일념…추가 양성 농가 없어야”

6일 밤 9시30분쯤 어둠이 짙게 깔린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의 한 양계농가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가축전염병 청정지역인 제주를 지키기 위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예방적 살처분에 나선 제주도청 소속 공무원들이었다.

닭 5만5000마리를 처리하기 위해 모인 인력만 200여명. 방역을 책임지는 축산과 직원뿐 아니라 다른 부서와 직속기관, 사업소에 몸담고 있는 5급 공무원들이 총출동한 자리였다.

오후 5시부터 시작해 4시간30분만에 방역복을 벗고 바깥으로 나온 50여명은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이었다.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사무관은 “살처분을 하면서 참담함을 느꼈다. 작은 병아리를 일일이 잡아서 죽여야만 했다.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면서 서둘러 자리를 떴다.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또 다른 사무관은 “농장주의 허망함에 비하면 우리가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다”고 손사래를 치며 “살아있는 닭을 포대자루에 담아서 가스로 질식시키고 저장탱크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직접 작업하면서 AI의 심각성을 여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보건소로부터 받은 타미플루 약봉지를 꺼내 보이며 “AI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이 있을 수 있지만 미리 인플루엔자 예방접종도 맞고 AI치료제까지 받아왔기 때문에 인체 감염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제주도인재개발원 소속 이선민 사무관은 “닭들도, 농가도 다들 불쌍했다”며 “애초에 관리가 더 잘 됐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계속해서 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생한 동료들을 살피던 전병화 도 친환경농정과장은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답답하고 안경에 습기까지 차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매뉴얼대로라면 눈도 비비면 안 되는데 일일이 지키기가 어려웠다”면서 “이런 일에 공무원이 나서서 하지 않으면 누가 나서려고 하겠느냐. 책임감을 갖고 했다”고 말했다.
 

가장 마지막에 나온 오세진 도 축산과 주무관은 방역복을 채 벗지도 못한 채 바깥으로 나와 누군가를 기다렸다. 다음 살처분 농가에 필요한 장비를 건네주려는 것이었다.

오 주무관은 “이제 매몰까지 다 했다. 흙이 모자라서 내일 오전에 부족분을 채울 계획”이라며 “침출수로 인해 지하수가 오염되지 않느냐는 우려들이 있는데 제주 같은 경우 지하수가 중요한 만큼 저장탱크에 담아 매몰시키기 때문에 오염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오 주문관은 이어 “추가 양성 농가가 없으면 현재 상황에서 종료되겠지만 앞으로 더 강한 검역으로 아예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게 큰 과제”라며 “이를 위해서는 행정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농가 자체적으로도 소독이라든가 반드시 지켜야 할 부분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주무관으로부터 장비를 건네받은 공무원을 따라 인근에 위치한 애월읍 고성리 양계농가로 향했다.

밤 10시쯤 해당 농가에는 도청 공무원 150여명이 분주히 AI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광령리 양계농가에서 두 시간가량 일을 한 뒤 건너와 투입된 상태였다.

가스 조달 등 현장을 지휘하던 김경원 도 축산과장은 “이 농장에서는 1만 마리에 대한 살처분이 이뤄질 계획인데 주입할 가스가 추가로 필요해서 기다리고 있다”며 “당초 매몰할 계획이었지만 땅이 여의치 않아서 서귀포 대정으로 옮겨 렌더링(열처리)하기로 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김 과장은 이어 “공무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땀 흘려 일하는데 고생할 때 고생하는 모습을 담아준다니 참 고맙다. 잘못했을 때는 따가운 질책이 마땅하지만 이럴 땐 응원도 필요하다”며 “공무원들이 대거 방역현장에 동원된 건 최초의 일인데 이는 청정 제주를 지켜내려는 의지”라고 강조했다.
 

같은 시각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 일대 양계농가에서도 제주시청 소속 공무원 200여명이 분주히 살처분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김병수 제주시 축산과장은 “5만2000마리를 처리하기 위해 오후 6시쯤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아마도 새벽까지 이어질 것 같다”며 “저장탱크를 이용해 모두 매몰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제주서부보건소와 동부보건소 직원들도 살처분 현장에 나와 보호물품 조달과 만약의 비상사태 등을 위해 작업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제주도는 지난 5일 도 동물위생시험소가 실시한 AI 간이 검사 결과 제주시 조천읍과 애월읍, 노형동 지역 농가 3곳의 가금류 59마리가 AI 양성 반응을 보임에 따라 해당 농가의 반경 3㎞ 이내 21곳 농장에서 사육하는 가금류 약 12만마리를 차례로 살처분했다.

앞서 3일에는 고병원성 AI로 확진된 제주시 애월읍 농가 3㎞ 이내의 가금류 9957마리, 제주시 이호동 농가 3㎞ 이내의 가금류 141마리 등 총 1만98마리를 살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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