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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빛 공해 2위 대한민국, 밤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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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한국의 수면(잠)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 특별한 심포지엄에 참관했다. 지난 1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심포지엄의 주제는 ‘빛 공해.’ 인공조명이 잠자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젊은 날 커피를 하루 여남은 잔 마셔도 탈 없이 잘 잤으나 요즘은 저녁에 커피 한잔만 마셔도 불면에 시달린다. 어쩌다 인터넷을 서핑하다 새벽 1시가 지나면 잠이 들지 않을 정도로 수면 건강에 문제를 느낀다. 발표자들 모두 도시의 휘황한 불빛, LED같은 인공조명, 스마트폰 등에서 나오는 청색광의 폐해를 지적했다.

하바드 대학의 사답 라만 교수의 발표가 관심을 끌었다. 라만 교수는 조명에서 청색광이 잠을 촉진하는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혀낸 과정을 설명하며, 4일 동안 조명에서 청색광을 제거해서 실험했더니 수면 질이 좋아지고 잠을 잘 자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그는 모니터를 통해 전자책을 읽는 것보다 종이책을 읽는 것이 수면에 좋다고 충고했다. 라만 교수는 규칙적인 수면을 강조했다. 하바드대학생을 상대로 수면과 학점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더니 규칙적으로 잠을 자는 학생의 학점이 훨씬 우수했다는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의 수면 전문가 제이미 제이저 교수는 “인공조명이 유발하는 블루라이트(가시광선중 파란, 남, 보라색의 청색영역)는 각종 암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비만, 당뇨병과 같은 대사장애를 일으키고 신체의 면역력을 떨어지게 만들어 바이러스 감염 등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고 발표했다. 그 폐해를 줄이는 방법으로 낮 시간 동안 충분히 태양광을 쬐는 것을 강조했다. 즉, 낮에는 우리가 필요한 양보다 빛을 부족하게 받고, 밤에는 지나치게 많은 빛을 받는 게 문제인데 건물 빌딩 안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도시의 사무직원들에겐 쉽지 않은 처방 같아 보인다.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이은일 교수는 “빛 공해가 심한 지역에서 야간교대근무자의 유방암 발병률이 실제로 높게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 조사는 더 보완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지만 빛과 유방암의 상관관계를 밝힌 것이어서 여성들에게 던지는 경고가 큰 것 같다.

고려대 정신의학과 이헌정 교수는 야간조명에 의한 빛 공해가 생체리듬을 교란시켜 우울증, 분노조절장애, 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도 아침과 낮의 햇볕을 꼭 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5억 년 전 생명이 탄생한 이래 지구는 하루 24시간의 자전운동을 하며 낮과 밤을 만들었고, 365일 만에 태양을 한 바퀴 돌면서 춘하추동의 계절을 만들었다.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태양 빛이다. 모든 생명체는 하루와 1년의 주기에 따라 오랜 기간 진화하면서 소위 생체리듬, 즉 생체시계를 갖게 됐다. 인간이 밤이 되면 졸리고 낮에는 깨어나는 게 바로 이 생체시계의 작용이다.

현대인의 생체시계가 교란을 일으키고 있다. 바로 빛 공해 때문이다. 빛은 생명의 근원인데, 빛이 생명의 훼방꾼이 되고 있다. 과거 인공조명은 사실 문명을 재는 기준이었다. 선진국은 밤이 밝고 후진국은 밤이 어두웠다. 그런 개념을 바꾸어야 할지도 모른다.

10년 전 일이다. 당시 본사를 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전한 인터넷 회사 ‘다음’의 사원과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30대 초반 청년이었다. 그는 이왕 서울을 떠났으니 조용히 살자며 곶자왈이 있는 한적한 시골에 집을 마련해서 살고 있었다.

그에게 제주도로 이주해서 가장 인상적인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온 첫 마디는 “밤을 보았습니다. 보름달이 그렇게 크고 밝은 걸 처음 알았고, 밤이 그렇게 깜깜하고 무서운 것을 처음 느꼈다”고 털어놨다.

서울은 불야성(不夜城)의 도시다. 잠을 자다 거실로 나와 커튼을 열면 사방을 둘러싼 아파트 숲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불로 도시는 환하다. 서울 사람들은 밤을 잃은 지 오래다.

서울만 아니라 한국의 크고 작은 도시가 갈수록 야간 조명으로 어둠이 걷히고 있다. 제주도의 밤도 10년 전 인터넷 회사 직원이 보았던 밤이 아니다. 인구도 늘었고 야간 조명도 휘황찬란해졌다. 밤에 은하수가 보이지 않는다.

밤에 인공위성에서 찍은 한반도 사진을 보면 남쪽은 하얗고 북쪽은 까맣다. 작년 미국 독일 이탈리아 3국 공동연구진이 발표한 ‘세계 빛 공해 지도’에 의하면, 한국은 빛 공해지역이 전체 국토의 89.4%이다. 20개 주요선진국 중 이탈리아가 1등, 한국이 2등이다.

우리는 어떤 성분이 지나치게 많아 역기능이 생기는 것을 오염(pollution)으로 표현한다. 미세먼지뿐 아니라 이산화탄소도 오염물질로 간주한다. 사실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영양소로서 지구생태계에 꼭 필요한 물질이다. 적당량만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게 너무 많아지면 온실가스로서 오염물질로 불린다.

빛도 마찬가지다. 빛이 너무 강하면 생물에 해롭다. 그래서 빛 공해(Light Pollution)라는 말이 생겨났다. 한국이 이렇게 빛 공해가 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인공조명의 확산이다. 그리고 개인은 컴퓨터 스마트폰을 켜놓고 밤을 낮처럼 산다. 전기료도 비교적 헐하고 빛이 건강에 주는 폐해에 아직 둔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 주최자는 대한의사협회였다. 그런데 대한변호사협회가 공동 주최자가 된 것, 또 LED 조명기구를 만드는 서울반도체가 심포지엄 후원자가 된 것이 특이했다. 빛 공해가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막연한 걱정거리에 불과하지만 의학계, 법조계, 산업계에는 구체적이고 심각한 건강 문제로 대두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한국은 인공위성 야간 사진을 토대로 만든 빛 공해 지도에서 2위의 빛 공해 국가이다. 하지만 청소년의 야간 스마트폰 중독 등 빛 공해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폐해까지 포함하면 한국의 빛 공해는 더 심각할지 모른다.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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