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최근 수년간 이어진 이른바 ‘제주 러시’로 제주지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유권자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4·13 총선에서 제주 이주민의 표심이 어느 정도의 파급력을 가져올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 이제 막 투표권을 얻은 새내기 유권자와 경제 상황에 따라 고정 지지층의 이탈 가능성이 큰 상인들의 표도 어디로 쏠릴지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뉴스1은 이주민, 대학생 및 취업준비생, 전통시장 상인들의 민심을 직접 들어본다.
 

제주에서는 제17대 총선부터 19대까지 12년간 지역구 3곳 모두 야당이 독차지해왔다. 이는 지지정당이 일괄적이라서라기보다는 혈연과 지연, 학연으로 얽히고 설킨 ‘궨당 문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번 20대 총선 결과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제주 러시’ 때문이다.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의 집계결과에 따르면 4·13 총선에서 제주지역 선거인수는 총 49만7710명으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 선거인수 44만1470명보다 12.7%(5만6240명)나 증가했다.

이처럼 제주지역 총선 선거인수가 증가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주민 증가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최근 4년간 제주지역으로 전입한 인구는 2012년 7만9501명·2013년 8만8851명·2014년 9만2508명·2015년 9만7508명 등 총 35만8368명에 이르며, 같은 기간 전입인구에서 전출인구를 뺀 순유입인구는 2012년 4876명·2013년 7823명·2014년 1만1112명·2015년 1만4257명 등 총 3만8068명에 달한다.

이로 볼 때 지난 4년간 증가한 제주지역 선거인수(5만6240명)에서 순유입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67.69%에 이르고 있다. 투표권이 없는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반절은 족히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 때문에 이번 총선 후보별 선거캠프에서는 ‘이주민 표심잡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궨당 문화에 기댈 수 없는 이주민들을 공약하기 위해 참신한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전략이다.
 

제주에 이주해 온 지 4년차가 된 이은혜씨(33·여·제주시 갑)는 “제주 정치를 보며 안타까웠던 점은 후보의 공약이나 정책보다 출신 지역,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선호도가 결정되는 것이었다”며 제주지역 특유의 공동체 문화에 기대지 말고 정책 선거를 펼쳐줄 것을 당부했다.

이씨는 이어 “지지정당은 딱히 없다”면서 “부동산 가격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제주도 비정규직 축소와 임금수준 향상을 실현할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고 싶다”고 말했다.

19대 총선 직후 제주에 입도한 전진호씨(43·제주시 갑) 역시 이씨와 마찬가지로 궨당 문화에 치우진 제주지역 선거문화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전씨는 “선거 전에는 각각의 지지정당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어디 초·중·고등학교냐를 따지고 종교를 따지고, 동호회를 다져 후보자를 결정한다”며 “아는 사람 누구가 어느 정당에 출마할 예정이니 특정 기업·기관에 정당 가입서를 들이밀며 해달라는 것 자체가 민폐라고 보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고 말했다.

전씨는 이어 “정책과 공약, 공약실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인물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이주민)은 인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며 “우리 지역을 위해 어떤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이가 국회의원이 됐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씨는 또 “이주민 상당수는 제주 자연에 반해 내려올 결심을 했을 것인데 내려와서 경험한 제주는 개발주의에 빠져 파헤치느라 정신없다”며 “환경과 자연이 파괴되고 난 후 원주민의 삶은 피폐해지고 관광객들을 위한 도시가 된 후에도 이주민들이 이곳(제주)에 남아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그땐 미련 없이 떠날 것”이라며 “더 늦기 전에 자연을 보전하고 아끼고 가꾸는 일에 국회의원들이 힘썼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서울 출신으로 대기업을 떠나 싱가포르로 이주했다가 지난해 제주에 정착한 박용순씨(48·제주시 을)도 “무차별적이고 구시대적인 건설 개발보다 자연을 보존하며 제주의 핵심 가치를 이용한 발전을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저 제주가 좋아 1년6개월 전 홀로 이주해 온 이태후씨(31·제주시 갑)는 “제주 이주자의 입장이다보니 이곳에서 내 삶이 안정화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힘써줄 수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씨는 이어 “이주민들이나 젊은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의 구조와 경제의 체질을 바꾸려는 노력이 있으나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며 “기득권의 눈치를 보느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신규사업자들이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을 해결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자리가 부족한 제주도에서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에 기회를 주고 이주자들과 젊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떠나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국회의원이 나와야 앞으로 제주도가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이씨는 “주변에 제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 제주도 집값이 너무 비싼데 비해 일자리가 부족하고 임금 수준이 낮아 대부분 망설이고 있다”며 “젊은 이주민들을 늘리고 좋은 자원들로 제주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이들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많이 필요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2013년 여름 제주에 입도한 김지환씨(38·제주시 갑)는 “그동안 지켜본 제주 정치는 풀뿌리 지역 민심을 정책에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다. 설득력 있고 피부로 와 닿는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국회의원이 나왔으면 좋겠다”면서 “정주인과 이주인과의 화합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입도 2년차인 한석균씨(42·제주시 을)는 “큰 그림을 보고 제주를 보전하는 방향이 아닌 눈치와 퍼주기식 정책으로 진행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제주의 교육, 환경, 문화, 부동산, 관광정책을 선진화 할 수 있는 분에게 한 표를 던질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도 표를 행사한 입도 7년차 이경석씨(34·서귀포)는 “제주로 이주해 와서 제주시, 서귀포시에 모두 살아봤는데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며 “한라산을 사이에 두고 서귀포는 사람들과 단절됐다는 느낌이 든다. 도시 자체가 멈춰 있는듯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이어 “서귀포시도 발전한다고 하는데 주구장창 생기는 건 죄다 관광객들을 위한 것 뿐”이라며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살기 좋은 서귀포시’를 만들어주는 후보를 뽑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주민 유권자 증가와 관련해 좌광일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제주지역 정치를 대표해온 혈연과 지연, 학연으로 얽히고설킨 이른바 궨당 문화가 점차적으로 그 영향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주민 증가가 이번 선거를 시작으로 제주 정치권의 변화에 신호탄을 날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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