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제주4·3 수형생존인 18명이 청구한 재심 판결을 앞두고 71년의 한(限)이 풀릴 수 있을지 선고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1시30분 오계춘 할머니(95) 등 수형생존인 18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내란실행·국방경비법 위반 등에 대한 재심 청구 사건 선고공판을 열 예정이다.

80~90대로 이뤄진 수형생존인들의 재심 청구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 할머니 등 수형생존인 18명은 성명불상의 군인들과 경찰에 의해 체포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2017년 4월 19일 법원에 군사재판 재심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948년 가을부터 1949년 여름 사이 군·경에 의해 제주도 내 수용시설에 구금돼 있다가 육지의 교도소로 이송된 뒤 최소 1년에서 최대 20년간 수형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구금된 근거를 유추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수형인 명부, 범죄·수사경력회보 내지 군집행지휘서, 감형장 등만 있을 뿐 공소장이나 공판기록, 판결문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이 엉터리 처형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고심하던 재판부는 이듬해 2월부터 5차례 4·3수형인들의 심문기일을 갖고 9월 3일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소송을 제기한 지 1년6개월 만이다.

재심의 전제요건인 '유죄의 확정 판결' 존재 여부를 놓고 고민했지만 재판부는 "당시 사법기관의 판단이 있었고 그에 따라 교도소에 구금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요건이 충족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수형인들의 일관된 진술을 토대로 "폭행과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불법구금과 가혹행위 등 재심 사유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재심 개시 결정으로 군법회의에서의 유죄 판결은 무효가 됐다.

2018년 10월 29일, 70년 만에 족쇄를 풀기 위한 정식 재판이 이뤄지게 됐지만 18명 중 정기성 할아버지(97)와 박순석 할머니(91) 등 2명은 병원에 입원해 법정에 출석하지 못했다.

첫 공판 이후 11월 26~27일 이틀에 걸쳐 공소사실 특정을 위한 피고인 심문 과정을 거친 검찰은 12월 17일 결심공판에서 "피고인들 전원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을 구한다"고 말했다.

공소기각이란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공소를 적법하지 않다고 인정해 사건의 실체를 심리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재판이다. 검찰이 사실상 무죄를 구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판검사는 "4·3사건에 대한 이념적 논란을 떠나 예기치 않게 운명을 달리한 수많은 제주도민들과 그들을 말없이 가슴에 묻고 평생을 살아온 가족들의 아물지 않은 아픔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며 "너무 늦었지만 이 자리를 빌어 여기 계신 모든 분들, 평생을 눈물과 한숨으로 버텨낸 모든 분들의 아픔이 치유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법정에 선 피고인들은 검찰의 진심 어린 사과에 벅찬 감정을 내비쳤다.

마지막 진술에서 김평국 할머니(89)는 "감사하다. 재심을 받으면서 내 몸에 묶였던 것이 풀리는 느낌이었다"며 "앞으로 우리 자손들한테 할머니가 전과가 있고 형무소에 살았다는 기록이 없어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피고인들이 고령인 점을 고려해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 일정을 진행한 재판부는 "결론은 가닥을 잡고 있는데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해를 넘겨 선고기일을 정한 점에 미안함을 표했다.

재판부가 최종적으로 어떤 판결을 내릴지 이날 오후 선고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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