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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송악산 그냥 다음 세대에 넘겨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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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 운다.”

‘절’은 파도를 의미하는 제주도 옛 방언이니, ‘파도가 운다’는 뜻이다. 요즘 현지 젊은이들은 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 전만 해도 제주도 갯마을 사람들이 노상 쓰던 말이다.

’절이 운다‘는 매우 시적(詩的) 표현이지만 과거 제주 사람들의 고단했던 삶의 결이 묻어있는 언어다. 파도 소리가 매우 깊고 멀리 퍼져나가면, 즉 ’절이 울면‘ 사람들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제주도 최남단에 곶처럼 바다로 뻗어나간 산이 하나 있다. 송악산(松岳山)이다. 해발 104m, 넓이도 골프장 하나 크기밖에 안 되는 작은 산이다. 그렇지만 그 꼭대기에 올라가면 누구나 이 산이 보물 같은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가파도, 마라도, 형제도가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제주도에서 바다 풍광을 가장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산 자체도 수만 년 전 화산이 두 번 터져 이루어진 이중화산(二重火山) 구조로, 대접 안에 큰 컵을 얹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송악산은 ‘절울이 오름’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태평양 거친 물결이 까만 현무암 단애에 부딪치면 하얀 포말이 하늘로 치솟으면서 소리를 낸다. 자동차 같은 문명의 소리가 없었을 때, 장마철 밤에 들리는 송악산 절 소리는 거대한 짐승이 우는 소리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절울이 오름’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름만큼이나 송악산은 이 지역 사람들의 애환을 담고 있는 오름이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송악산 해변에 진지동굴을 파고, 알뜨르 비행장을 만들면서 주민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했다.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정부는 ‘예비검속’을 실시하도록 군경에 지시했고, 제주도에 주둔하던 군은 잡혀온 주민 210명을 재판도 없이 이곳 송악산 기슭 셋알오름 분화구에 몰아넣고 집단으로 총살하여 묻어버렸다. 4·3의 아픈 상흔 중 하나다. 전쟁 중에는 송악산과 알뜨르 비행장이 육군 제1훈련소가 되어 전쟁 병사들을 길러냈다. 이런 역사적 상처 덕택인지 송악산 일대는 거의 자연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봄날 망아지가 풀을 뜯고, 주민들이 노란 유채꽃이 핀 들판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모습이 정겹다. 올레꾼들이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푸른 소나무 숲속에서 요란스럽게 들려온다. 요즘 송악산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목가적 풍경이다.

이렇게 송악산은 평화로운데, 지금 제주 시민사회는 송악산과 관련하여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월 19일 제주도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가 중국자본이 제출한 대규모 송악산 개발프로젝트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중국 칭다오에 본사를 둔 ‘신해원 유한회사’는 송악산 일대 약 6만평에 ‘뉴오션타운’을 건설할 계획이다. 사업비 3219억 원을 투자해 객실 545개의 호텔 2동, 문화센터, 캠핑장, 조각공원 등을 조성한다. 숙박 및 위락시설 위주의 유원지 계획이다.

‘신해원’이 ‘뉴오션타운’ 계획을 세우고 제주도에 인가를 신청한 것은 중국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던 2013년이다. 그러나 4차례에 걸친 환경영향평가 심의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가 지난 1월 5차 심의에서 승인을 받게 된 것이다. 호텔 건물 층수를 6층에서 5층으로 낮추는 등 미미한 수정을 했고, 이에 심의위원회는 법적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하고 승인을 내준 것 같다.

승인이 나오자 여러 환경·시민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으며 1000여명의 주민들도 반대 운동에 나섰다. 물론 개발이익을 생각하며 암암리에 찬성하는 주민도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 공은 제주도의회로 넘어갔다.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가 승인한 ‘뉴오션타운’ 프로젝트는 도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시행할 수 있다.

보전이냐 개발이냐는 한국 어디서든 풀기 어려운 첨예한 갈등의 문제다. 결말의 대부분은 경제 논리에 이끌려 개발 쪽으로 많이 기울어졌던 게 상례다.

과연 송악산 개발도 이런 패턴으로 가야 하는지 제주도와 제주도민들은 멀리 내다보며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시대 변화와 개발 추세, 제주도의 미래가치, 과거의 개발 오류 등을 고민한다면 미래 세대를 위한 송악산의 개발과 보전 모델이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는 눈에 따라 견해가 다르겠지만 2000년 대 초반 ‘섭지코지’개발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개발 전 섭지코지는 소들이 풀을 뜯고 해녀들이 물질을 하던 뛰어난 경관으로 송악산과 쌍벽을 이루는 곳이었으나, 지금은 재벌이 운영하는 리조트 시설로 해변의 공유화가 제한받고 있다. 송악산에 계획대로 뉴오션타운이 완공된다면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지 않을까.

지금 제주도는 과잉관광(over-tourism)의 후유증이 심하다. 난개발, 쓰레기 문제, 교통문제, 각종 범죄로 주민들의 생활여건이 악화되고 있다. 적정수준을 넘은 숙박시설 과잉으로 적잖은 관광객이 들어오는데도 호텔 공실은 늘고 있다.

시대적 변화, 개발의 추세, 제주도의 미래 가치를 생각할 때, 송악산은 단순한 경관뿐 아니라 지질 및 생태 등 보전할 가치가 개발의 가치보다 클 것이다.

송악산 하나 그대로 두는 것도 이미 파괴되고 훼손된 제주도의 자연을 보상한다는 차원에서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제주도의 자연은 현 세대가 사는 환경이지만 미래 세대가 살아가야 할 환경이기도 하다. 그들이 결정할 여지도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뉴스1 고문>


하늘에서 본 송악산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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