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과 주한미군사고문단은 5·10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범죄자로 인식했으며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한 초토화작전을 훌륭한 작전으로 평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해 미국자료현지조사팀 3명을 구성해 6개월 동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을 중심으로 4‧3 관련 자료를 조사한 결과 관련 기록 3만 8000여 매를 입수했다고 12일 밝혔다.

조사팀은 4‧3 당시 미군정과 군사고문단 수뇌부의 인식을 직접 기록한 자료들을 대량 확보했다.

연합군최고사령부(Supreme Commander for the Allied Powers, SCAP) 자료에 따르면 미군정의 최고책임자인 하지(Hodge) 중장은 남한의 단독선거를 앞둔 1948년 3월 3일 UN임시위원단과 덕수궁에서 연 회의에서 '정치범(political prisoner)'의 정의를 놓고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UN임시위원단은 남한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는 세력을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있으니 그들을 정치범으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나 하지는 "선거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파괴하는 자들을 어떻게 정치범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동기는 정치적일지 모르나 범죄자일 뿐이다"며 맞섰다.

임시위원단은 "우익세력이 그런 행동을 해도 마찬가지냐"고 따졌고 하지는 "그렇다"고 답했다.

재단은 하지의 이같은 답변은 5‧10선거를 반대한 제주에서 미군의 지휘 아래 한국 군경과 우익단체이 무차별 학살이 저지른 배경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1948년 7월 2일자 미 국무부 문서에는 하지의 정치고문 제이콥스(Joseph E. Jacobs)는 제주의 최고지휘관 브라운(Rothell H. Brown)대령의 보고를 바탕으로 제주도민의 80%가 공산주의자와 관계돼 있거나 공포 때문에 그들과 협조하고 있다고 국무부에 보고한 내용도 담겨 있다.

미군 보고서에는 제주도에서 소위 초토화작전을 의미하는 '싹쓸이(cleaning-up)'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미 극동군사령부 문서에 따르면 주한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Roberts) 준장은 1949년 1월 28일 "공산주의자들을 싹쓸이하기 위해 제주에 1개 대대를 추가 파병하겠다"는 채병덕 참모총장의 서한에 "최고 수준의 사고(top level thinking)"라고 극찬했다.

하지 중장의 답변과 달리 미군정은 우익세력의 학살에는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미 극동군사령부(Far East Command, 일명 맥아더사령부) 정보요약 보고를 보면 미군은 1949년 2월 20일 제주에서 민보단이 76명의 주민들을 창으로 찔러 살해했을 때 "그들에게 주의(brought to the attention)를 줄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사건을 마무리 짓고 있다.

극동군사령부 문서 1949년 7월 21일자에는 4‧3 군사재판 수형자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우는 내용이 담겼다. 군사재판 수형자중 일부는 지난해 한국 법원에에서 무죄나 다름없는 공소기각과 국가보상판결을 받았다.

재단은 "당시 미군이 공산주의자들이란 누명을 씌우고 불법적인 재판과 가혹행위를 용인한 것"이라며 "미군 최고수뇌부의 이런 인식은 '공산주의자는 통상의 법률적 방법으로 다뤄선 안 된다'던 이승만의 인식과 일치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미국자료 조사는 2001년 4·3위원회 이후 18년 만에 재개된 것이다.

재단은 아직 비밀해제가 안된 미군자료를 계속 요청하는 한편 조사 대상을 미육군군사연구소, 트루먼도서관과 미국 소재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재단은 올 연말에 이번 수집자료와 이전에 입수한 자료 가운데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4‧3 미국자료집'을 편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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