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카드기 없는 매장이 수두룩인데 재난지원금 특수는 말도 안 되죠. 재난지원금 나오기 전이나 후나 똑같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직격탄을 맞은 지역경제가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을 등에 업고 점차 살아나는 모양새다.

그러나 카드 단말기 설치가 미흡하고 지역화폐가 없는 제주 시장상인들은 모처럼 온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22일 제주시민속오일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카드로만 지급되는 재난지원금에 한 목소리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장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A씨는 "매일 열리는 시장도 아니고 5일에 한 번 열리는 장이다보니 많은 점포들에 카드 단말기가 없다"며 "카드를 못 쓰니 매출은 당연히 제자리걸음"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시민속오일시장에서 카드 단말기가 설치된 곳은 14%에 불과하다. 동문시장 등 상설시장의 단말기 설치율 70%에 비하면 턱 없이 적은 수치다. 일부는 무허가 영업이어서 카드 사용을 아예 할 수 없는 곳도 있다.

결과적으로 그동안의 관행이 위기 상황에서 발목을 잡은 셈이다.

2018년 제주도가 진행한 제주지역 전통시장 매출동향 조사 결과 '카드 사용이 되지 않아' 전통시장을 찾지 않는다는 응답이 전체의 29%를 차지한 바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전통시장의 경우 카드 단말기가 없는 곳이 많고, 무허가 영업도 일부 있는 게 사실"이라며 "고령층 영세상인이 많아 행정에서 강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 현금 지급도 효과 미미…지역화폐 도입 목소리

현금으로 지급하는 제주형 재난지원금도 전통시장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있다.

점차 전통시장을 외면하는 추세여서 현금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해도 시장에 풀리는 돈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일시장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판매하고 있는 정모씨(55)는 "제주도 재난지원금이 현금으로 지급됐지만 매출에 큰 변화가 없었다"며 "현금으로 지원금을 주니 시장보단 더 가깝고 편한 마트를 찾은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제주도가 매해 제주지역 전통시장 매출동향을 조사한 결과 매출액 감소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일평균 매출액은 1억5292만원으로 전년(1억5834만원)보다 3.4% 감소했고, 2019년 일평균 매출액은 1억4623만원으로 전년도보다 4.4% 줄었다.

전통시장 상인 스스로도 카드 사용 등 개선책을 마련하고, 동시에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지역화폐'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장에서 만난 도민 김모씨(57)는 "재난지원금에 상품권이 포함되지 않으니 지원금을 쓰기 위해서는 집 근처 하나로마트를 찾을 수밖에 없다"며 "카드기 없는 무허가 점포들도 문제겠지만 소상공인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고 말했다.

박인철 제주도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현금으로 재난지원금을 준다고 해도 시장이 아닌 마트에서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릴 것"이라며 "현금 지급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지역 상품권을 만드는 게 소상공인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라고 제안했다.

현재 제주에는 행정기관이 발행하는 지역상품권이 없다. 제주도상인연합회에서 발급해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주사랑상품권이 있지만 사용처에 한계가 있다.

제주도는 올해 내로 지역화폐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추진 중이다.

원희룡 지사는 지난 4월 도의회 도정질문에서 "제주도가 직접 발행하는 지역상품권 제도를 본격적으로 연구해 전국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형태를 마련, 가급적으로 올해 안에 도입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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