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리는 보육교사 살인사건의 무죄 판결은 국내 최초로 시도한 과학수사의 실패라는 점에서 수사기관이 더욱 뼈아팠다.

2009년 2월 발생 이후 별다른 소득없이 공소시효만 기다리던 이 사건에 한줄기 빛이 된 건 바로 동물 사체 실험이다.

피해자 이모씨(27·여)가 실종된 날은 2009년 2월1일 새벽이고 시신이 발견된 날은 약 일주일 뒤인 2월8일 오후 1시50분이다.

용의자를 좁히려면 범행일 특정이 우선인데 이 사건은 이씨가 언제 살해됐는지조차 명확하지가 않았다.

실종 당일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당시 부검의는 사체 발견일에서 최대 24시간 이내라는 결론을 냈다. 부패가 없고 시신의 직장체온이 대기온도보다 높다는 등의 이유였다.

유력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깨려면 범행일부터 특정해야 했지만 당시 과학수사로는 한계가 있었다.

9년 뒤인 2018년 제주경찰은 동물 사체의 부패 과정을 관찰한 뒤 시신의 부패 정도와 대조해 피해자의 사망시간을 추정하기로 한다.

동물 사체로 사람의 사망시간을 추정하는 실험은 국내 처음이었다. 2014년 유병언 시신 발견 당시 곤충 사체로 사망시간을 추정한 적은 있다.

국내 법의학계 권위자인 가천대 이정빈 석좌교수의 주관으로 제주경찰은 물론 전북청 과학수사계, 경찰수사연구원 등 전국의 과학수사요원들이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에는 55~70kg 상당의 돼지 4마리와 10~12kg의 비글 3마리를 사용했다.

동물에 피해자가 입었던 무스탕을 입히고 빗물 대신 소방용수를 뿌리는 등 사건 당시와 최대한 비슷한 기상 조건을 조성하며 공을 들였다.

실험팀은 배수로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부패는 지연되고 피해자가 입고 있던 두터운 무스탕 때문에 시신의 체온이 유지된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이 실험 결과를 토대로 피해자 실종일을 사망 시점으로 결론짓고 용의자 A씨(53)를 체포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동물실험만으로 피해자의 사망시점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과학 실험을 신뢰하려면 변수 이외 모든 조건은 동일하게 통제해야 하는데 기온, 강우 수압과 양, 음식물의 양이나 상태, 혈중알코올 농도 등의 조건이 통제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예를들어 피해자가 유기된 기간의 평균 기온은 8.1도, 동물실험 기간은 7.9도로 유사하기는 하지만 최고 온도와 최저 온도, 시각별 온도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또 실험의 오류를 최소화하려면 일정량 이상의 자료를 수집해야 하는데 단 1회의 실험결과로 정확성을 검증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부장판사 왕정옥)는 지난 8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강간 등 살인)로 기소된 A씨에게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해 이 사건은 영구 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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