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장마가 끝났다. 공식적으로 6월 24일 시작한 장마가 8월 15일까지 무려 52일간 지속됐으니, 정말 이런 장마는 흔치 않다.

장마 끝판에 수해 현장을 포착한 TV 영상 이미지 2개가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8월 9일 전남 구례군에서는 하천 둑이 무너지며 홍수에 떠내려가던 소 떼들이 살아남기 위해 주택과 축사 지붕으로 올라가 대피해 있는 광경이 마치 위기를 모면하고 망연히 서 있는 사람의 모습과 흡사했다.

7월 20일 폭우가 쏟아진 대전 서구에서는 아파트 일대가 물바다가 되면서 주차장의 자동차들은 지붕까지 물에 잠겼고 주민 75명이 고립되자 대전소방본부구조팀이 고무보트를 타고 이들을 모두 구출해냈다. 고무보트를 타고 나오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구조팀의 기민성과 현대적 장비의 기능에 감탄하면서도 어이없이 물의 포로가 되고 마는 인간의 허약함을 절감하게 했다.

이번 장마는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냈을 뿐 아니라 물관리 책임과 관련하여 행정적 정치적 공방이 열띠게 벌어지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가슴 아프게 40여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의암댐에서 떠내려가는 인공 수초를 고무보트에 의지하여 보호하려다 관계 공무원 등 5명이 수문으로 휩쓸려 들어가면서 사망한 사고는 인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댐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말해주는 불상사다.

댐수위 조절 실패로 제방이 무너지고 하류가 물바다가 되어 막대한 피해를 일으킨 섬진강 낙동강 금강 수계 댐들의 물관리 논쟁이 수자원공사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벌어졌고, 이어서 수자원공사와 기상청 사이에 기상예보 논란이 벌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4대강 보를 놓고 여당은 홍수를 키웠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홍수를 막았다고 옹호하는 정치적 입씨름이 국민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임진강 범람은 차원이 다른 논쟁을 불렀다. 북한이 임진강 상류의 황강댐을 방류하면서 남측에 통보해주지 않았고 그 때문에 파주 일대가 큰 피해를 보았다. 북한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문재인 정부의 신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곤혹스럽고 어색한 유감의 뜻을 표하고 대통령도 임진강 유역 피해지역을 방문해 비슷한 언급을 했지만, 북한에선 반응이 없다. 상류는 갑이고 하류는 을이라는 물의 정치사회학적 법칙을 확인하는 계기였지만 남북한 간의 강 이용을 놓고 미래의 숙제를 안게 됐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물관리 문제, 아니 물 문제를 본질적으로 생각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왜냐하면 지금 모든 게 정상이 아니다. 지난 연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를 무섭게 뒤덮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판에 8월 장마가 한반도를 난타했다.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올여름 기록적인 폭우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불안을 가중했다. 중국 싼샤댐 붕괴 위기가 주변국에 염려를 끼칠 정도로 양쯔강의 범람은 이제 한국인들에게도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이러스나 이상 장마의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지목되고 있다. 물은 기후변화의 전달자다. 즉 기후변화에 의해 물의 조화가 일어난다. 올해 일어난 동아시아의 물난리도 기후변화에 의한 물의 조화가 커진 결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지금의 기후변화 추세가 계속되면 물의 횡포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이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지구상의 물은 육지를 통째로 삼킬 수 있는 규모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국제협력을 통해 화석연료 사용을 획기적으로 제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국가적으로 더 시급한 일은 더 큰 규모로 다가올 물난리에 준비하는 일이다. 이미 이번 물난리로 드러났듯이 같은 하천의 물관리를 두고 여러 부처가 불합리하게 중복되어 있다. 나름의 행정적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우리 행정체계의 고질병, 즉 밥그릇 싸움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5년 단임 정부가 표만 의식한 무리한 물관리 공약 이행이 화를 부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책임 공방만 되풀이하다가 더 큰 물난리가 발생할 경우 효율적인 방재가 힘들고 국민 고통이 심해질 것이다. 물관리 정책이 정권 바뀔 때마다 바뀌면 그 자체가 재난이다. 방재, 구호, 재정 확보와 배분에 대한 인프라가 과학적 기반 위에서 여야 공감대를 통해 기후변화 시대에 맞추어 재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보다 겸허하게 물을 바라보아야 할 시점이다. 강은 관리할 수 있지만 지배할 수 없다는 지난 100년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기후 변화로 21세기의 강은 더욱 다루기 까다로운 존재가 될 것이니까.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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