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자바 상륙’ 10년 만에 한천 범람…“태풍 나리 위력”
비상 대피로 지정된 시민회관 문닫혀 있어 헛걸음만

“자다보니 갑자기 쾅 하는 큰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바깥으로 뛰쳐 나왔어요.”

제18호 태풍 차바(CHABA)가 상륙한 5일 새벽 제주지역은 폭우와 강풍이 몰아치면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이날 새벽 3시쯤 제주시 노형동 소재 4층짜리 다세대주택에 거주하는 선우미란씨(48·여)는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화들짝 잠이 깼다.

바깥에 나와서 보니 바로 옆 공사장에 비치돼 있던 크레인이 강풍에 꺾인 채 선우씨가 사는 빌라를 향해 아슬아슬 매달려 있었다.

발을 동동 굴리고 있던 찰나 공사장 관계자들과 119구조대 등이 출동해 자칫 해당 빌라 주민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곧바로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새벽 4시쯤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잠이 깨서 나온 주민들은 노형동주민센터나 지인의 집으로 향했다. 해당 빌라에는 총 8세대가 거주하고 있었다.

경찰은 구조물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인근 도로를 통제하는 한편 공사장 관계자들에게 조속히 구조물을 안전하게 처리해줄 것을 요구했다.

부모님과 함께 잠을 자다 얼떨결에 주민센터까지 오게 된 조빈씨(28)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밖으로 대피했다. 태풍 영향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새벽 4시10분쯤 폭우로 인해 제주시 동문로 산지천 남수각이 범람 위기에 다다르자 제주시는 주민 대피령이 내렸다.

곳곳에서 차량 통제가 이뤄졌고 일부 주민들은 인근 시민회관이나 문화의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시민회관은 미리 비상 대피소로 지정돼 있었음에도 굳게 문이 닫힌 상태여서 주민들은 발길을 돌려야만했다.

폭우를 뚫고 간 송선희씨(62·여)는 “공무원들이 비상근무를 한다고 해놓고 대피처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뭐하는 짓이냐”고 성토했다.
 

제주시 용문사거리 부근 한천도 물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주차돼 있던 차량 50여 대가 물살에 휩쓸렸다.

한천 인근 편의점 전면 유리창은 강풍에 산산조각이 나 뻥 뚫려있고 곳곳에 세워져 있던 입간판이 구겨진 채로 도로에 나뒹굴었다.

인근 저지대에 거주하는 주민 2명은 집 안까지 물이 들어와 119구조대와 경찰의 도움을 받아 대피하기도 했다.

용담동 주민 고수희씨(43·여)는 “2007년 태풍 나리 이후 한천이 이렇게 불어난 건 처음”이라며 “차들이 뒤엉켜서 걱정스러울 정도”라고 우려했다.

다행히 이날 오전 5시쯤 비가 서서히 멈추면서 범람 위기를 넘겨 주민 대피령이 해제돼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오전 6시쯤 찾은 제주시 오라동 복합체육관은 지붕 상판들이 날아가 있었으며, 파편들이 체육관 주변 주차장과 도로변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이수남씨(43)는 “2년 전 준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도 강풍 때문에 지붕이 날라 갔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어김없이 난리가 났다”며 “애초에 부실 공사가 이뤄진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제주도체육회 관계자는 “태풍 영향을 잘 버티다가 새벽에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을 이기지 못해 복합체육관 지붕이 날아가기 시작했다”며 “조속히 지붕 잔해를 치우고 태풍이 지나가면 지붕 보수 공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8시 현재 제주 곳곳에서는 태풍 차바가 남기고 간 생채기들에 대한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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