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 세계를 품는다] 1. 제주로 돌아온 新해녀

[편집자 주] 제주인의 어머니, '제주해녀'가 세계인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평가기구가 10월31일 제주해녀문화에 대해 등재권고 판정을 내려 사실상 등재가 확정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뉴스1 제주는 제주해녀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5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바람이 제법 차가워진 10월 31일 오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해녀탈의장에서 만난 채지애씨(34·여)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물질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무슈트를 입고 수모와 수경, 오리발, 태왁(자맥질을 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을 뜨게 하는 뒤웅박), 망사리(해산물을 넣어두는 그물망)를 한 아름 안은 채 바다로 향하는 채씨의 뒷모습에 당당함이 묻어났다.

◇ 어머니의 반대에도 택한 해녀의 길
4년 전 헤어디자이너라는 서울의 삶을 버리고 고향 제주로 돌아왔을 때, 해녀가 되겠다는 채씨의 말에 평생을 해녀로 살아온 어머니(63)는 결사반대였다.

“왜 너까지 이 힘든 일을 하려고 하느냐”고 말렸지만 이미 마음을 먹은 채씨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기어코 해녀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자유’와 ‘마음의 안식처’를 바랐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들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 없는 미안함과 서비스직이기 때문에 느껴야만 했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채씨는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다.

그때 말없이 다 내어주는 바다의 품에 안겨서 자유롭게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머니는 처음에 너무 부끄럽다고 하셨어요. 해녀는 천하고 어렵고 고된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어머니가 시켰다고 오해를 한 사람들은 왜 아까운 딸을 물질을 시키느냐며 나무라기도 했죠.”

어머니의 삶을 보고 자란 채씨는 해녀가 충분히 가치 있는 직업이라고 판단했고, 사람들의 눈살을 아랑곳하지 않고 해녀가 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물멀미가 나서 헛구역질을 할 때도 많았고, 추운 겨울날에는 발이 꽁꽁 얼어붙기도 했다. 함께 물질에 나선 해녀 할머니가 닻에 걸려 세상을 떠나셨을 때는 한동안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마음을 다독였고 해녀로서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을 떠올렸다.

‘소라 하나 잡으면 우리 아들 과자 하나 사줄 수 있고, 소라 하나 더 잡으면 우리 딸 예쁜 핀 사줄 수 있고’라고 말이다.

“해녀들은 모성애가 진짜 강하다는 얘기들을 하거든요. 사랑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바다에 들어가는 분들이 많아요. 어떤 날에는 내가 과연 엄마가 아니었어도 해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 “해녀는 혼자 할 수 없어”
바다가 내어준 해산물로 수 십 년간 생계를 꾸려온 상군 해녀들은 하군 해녀들을 위해 깊은 바다에서 어린 소라나 전복을 잡아다가 얕은 바다에 뿌려주곤 한다.

해녀는 경력과 실력에 따라 상군·중군·하군으로 나뉘게 되는데, 혼자 바다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비슷한 군끼리 2~3명 정도 그룹을 지어 다닌다.

같은 시간에 들어가 같은 시간에 나오고, 물속에서 잘 나왔나 살펴봐주고 수확물이 많을 때에는 힘을 모아 망사리를 끌어주기도 한다.

“해녀는 공동체 문화예요. 365일 바다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하기 전에는 늘 모여서 회의를 해요. 왜 해녀 가입을 시켜주지 않느냐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공동체 문화를 알기까지의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갖는 거예요.”

채씨는 해녀의 기본 덕목으로 공동체 연대의식을 꼽으며 ‘욕심’보다는 서로를 향한 ‘배려’가 우선돼야 오래도록 해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 해녀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영화에 보면 욕심을 내서 내 숨을 넘으면 바다가 나를 삼킬 수 있다는 말이 나와요. 올라올 수 있는 숨을 남겨놓아야 하는데 욕심을 부리다가 그 숨을 물속에서 먹어버리면 한 순간에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뜻이죠.”

눈앞의 이익 앞에서 욕심을 덜어낼 줄 아는 자제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채씨는 해녀 양성 교육이 단순히 기술적인 면에서만 이뤄질 게 아니라 정신적인 면까지 동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갈수록 해녀가 고령화되고 숫자가 줄어들자 제주도에서는 해녀 양성 방안을 골몰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한 것이다.

“어촌계마다 갖고 있는 지형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교육을 시킬 게 아니라 마을 안에서 신규 해녀 양성 과정을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연세가 있으신 해녀분과 신규 해녀를 엮어서 일대일 멘토링식으로 교육을 하는 거죠.”

 

 

 

 

◇ 젊은 해녀들의 모임 ‘해수다’로 세상과 소통 나서
60~80대 해녀가 주를 이루고 있는 제주도에서 그동안에는 채씨처럼 바깥으로 목소리를 내는 해녀들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제주에서 해녀가 함께 어우러져 잘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던 채씨는 최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30~40대 해녀 9명이 만나 ‘해수다(해녀들의 수다)’라는 모임을 꾸렸다.

해수다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각 어촌계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을 계획이다. 또 전문 직업으로서의 인식을 확보하고 가치있는 문화로서의 제주 해녀를 알리겠다는 포부도 갖고 있다.

요즘 해수다의 큰 고민은 제주시 도두하수처리장 등에서 정화되지 않은 오염수가 그대로 바다로 방류되면서 바다가 오염되고, 자원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채씨는 “제주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개발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환경을 너무 등한시 하는 것 같아 속상하다”며 “바다의 자원을 우선적으로 지켜야만 해녀들도 늘어나고 가치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해수다는 제주 해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단순히 등재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후 해녀들이 피부에 와 닿을만한 정책을 펼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채씨는 “연로한 해녀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어릴 적부터 어쩔 수 없이 물에 들어갔기 때문에 자존감이 많이 낮다”며 “이들 스스로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해녀들은 제주 바다가 우리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바다를 빌려서 쓰면서 보존을 하고 함께 지켜나가고 있는 모습이 유네스코 등재를 통해 부각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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